노인과 어르신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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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 명예도민
우리나라는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으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에서 노인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이 1위라는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속살을 갖고 있다.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나 사회차원에서 노년 인구의 삶의 질과 복지에 대한 정책은 뒤처져 있는 현실이다.

최근 서울시는 추락한 노인의 지위를 높이고자 하는 일환으로, ‘노인’에서 ‘어르신’을 공식명칭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노인’이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는 것이 이러한 명칭 개정의 배경이 되었다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늙었다’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년, 소년,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의 각 연령 구분에 따라 노인은 공식적인 표현일 뿐이다. 그런데 노인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은 늙음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치기준을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준은 바로 우리말 속에 있다. 우리말에는 ‘늙은 사람’을 표현하는 다섯 가지 말이 있다. 늙은이, 노인, 노인장, 어른, 어르신이다. 나이만 든 사람을 비하할 때 늙은이라 하고, 중립적으로 표현할 때 노인, 노인을 높여서 불러야 하는 상황에서 노인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른과 어르신은 다르다. 늙은이, 노인, 노인장과 어른, 어르신을 구분하는 경계는 바로‘얼’이다. ‘얼’은 생명의 본질이고 만물의 근원이며, 정신이다. 얼을 깨우쳐야 어른이 되고 어르신이 될 수 있다. 어른과 어르신은 육체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인 기준, 양심의 나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우리는 ‘얼’의 의미를 ‘얼굴’이라는 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어로는 face, 한자로는 안면(顔面)으로 서로 마주 대하는 면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말 얼굴은 ‘얼’과 ‘굴’이 합해서 나온 말이다. 얼굴에는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구멍 등 많은 굴이 있고, 그 굴로 얼이 드나든다는 정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얼굴은 ‘얼이 드나드는 굴’ 또는 ‘얼이 깃든 굴’이라는 의미이다. 얼굴은 사람에게만 쓰고, 동물에게는 쓰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당연히 얼을 가져야 한다. 얼을 가지면 얼굴을 들고 당당하게 살 수가 있다. 하지만 얼이 빠지면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다. ‘얼’이 빠진 사람을 ‘얼간이’라고 한다. ‘얼’을 가지면 조화로운 ‘좋은 사람’이 되고, ‘얼’이 빠지면 나만 아는 ‘나쁜 사람’이 된다. ‘나쁘다’는 것은 ‘나뿐’인 상태이다. 자기만 알고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이기적인 욕망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곧 나쁜 사람이다.

어른과 어르신에는 나이가 든 좋은 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얼을 깨우치고 살아가면 ‘어른’이 되고, 그 얼이 신의 경지에까지 이르면 ‘어르신’이라 한다. 그래서 ‘어르신’은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큰 마음(大德)을 품고, 사람과 세상을 살릴 수 있는 큰 지혜(大惠)가 열리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온 힘(大力)을 다해 애쓰는 분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흠모를 받는 분이다.

이렇듯 우리말은 국학의 정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우리말은 바로 국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얼을 가진 어른과 어르신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렇지 못하고 노인만 많으면 그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어른이 되고 어르신이 될 수 있는 내면의 공부와 실천을 하는 노년 인구가 많아지면, 건강하고 행복한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평균수명 80세,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비율이 10%를 훨씬 넘어선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대처하는 가장 슬기로운 길이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른과 어르신이 많이 사는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우리말 속에 이렇듯 깊은 뜻과 정신이 숨어 있다. 우리말 속에 사람이 살아가는 할 도리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물론 세계적인 정신문화대국이 될 수 있는 정신이 샘물처럼 담겨있다. 그 정신의 샘물을 퍼 올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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