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야, 새야, 동박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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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국제PEN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장 / 시인
소설(小雪)이 지나고 며칠 없어 대설(大雪),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에서도 덩달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이럴 때는 시골집 따뜻한 안방 아랫목도 그립지만 겨울 햇살이 솜이불 속처럼 내려앉은 뒷동산 동백나무 숲의 온기도 그리울 때다. 동백나무 숲의 온기라면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의 사연도 이에 못지않다. 소작농의 아들 ‘나’와 마름의 딸 ‘점순’이라는 사춘기 소년 소녀가 엮는 아름다운 자연애, 그리고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풋풋한 사랑이 듬뿍 담긴 동백꽃 피는 산골의 해학적 사랑이야기다. 작품의 끝 부분 “…뭣에 밀렸는지 점순이는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쓰러졌다. 그 바람에 나도 겹쳐 쓰러졌다. 우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에 파묻혀 버렸다. 향긋한 그 냄새에 땅이 꺼지는 듯 정신이 아찔해진다…” 제주의 시골 동백나무 숲에서도 있을법한 풋풋한 사랑의 온기다.

지금 이곳 성산포에는 그러한 한겨울 동백 숲 풍광을 만끽하는 촌부 한사람이 있다. ‘정성필’이 그 사람이다. 그는 전통적인 시골마을의 인정 많은 목수다. 그렇더라도 그의 솜씨는 가끔씩 제주도 기능 공예품 공모전 혹은 관광기념품 공모전에도 응모해 때로는 입상도 하고 전국대회까지도 출전할 만큼 꽤나 장인으로서의 기능을 갖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목수일 외에도 즐기는 것이 하나 있다. 자연 사랑의 일과다. 그가 들에 나가 휘파람을 한 번 불었다 하면 계절 따라 다른 텃새들이 여지없이 날아든다. 종달새에서부터 속새, 멧새, 동박새 박새 직박구리 등이 그것들이다.

그만큼 그는 새의 습성을 알고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소리를 듣고 함께 화답 할 줄 아는 재주를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집 새장에는 언제나 각종 텃새들이 그와 함께 있는 걸 본다. 그리고 그는 그들과 함께 대화한다. 새장을 열어놔도 그들은 그의 집을 떠나질 않는다. 밖으로 날아갔다가도 이내 돌아와 그들의 집이 돼버린 새장을 찾아든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그와 새들 간의 소통에 있다. 그들의 기쁨, 슬픔, 심지어 그들의 사랑까지도 함께 소통한다. 그리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그들이 살던 본래의 자연으로 떠나보낸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자연에서 휘파람을 불며 그들과 또다시 정감어린 대화로 소통한다.

오늘 나는 그와 함께 그가 늘 즐겨 찾는 동백나무 숲으로 갔다. 숲은 옅은 겨울 햇살 속에 서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동백꽃망울들로 가득하다. 숲의 가장자리에는 그가 손수 만든 동박새장이 걸려 있다. 대나무 젓가락보다도 가늘게 다듬은 살을 꽂아 만든 대나무 새장이다. 새장 속에는 동박새가 좋아하는 잘 익은 홍시(紅?) 몇 알과 몇 마리의 벌레와 또 진디물이 묻어 있는 귤잎 같은 것들이 달콤한 꿀물과 함께 있다. 그리고 그는 아까부터 그의 특유한 휘파람소리로 동박새를 부른다. 한 가닥 싸-한 겨울 바람이 건너편 대숲을 훑고 지나간다. 그러나 반응은 그것 뿐, 언제나 앞 다투며 찾아오던 동박새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고 그보다는 훨씬 이전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지금 그의 손엔 어디서 찾았는지 모를 죽은 지 오래된 동박새 한 마리가 들여 있다. 건너편 감귤 밭모퉁이에서 찾았다는 거다. 가끔씩 감귤 열매즙을 즐기는 동박새들로부터 입는 피해를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농장주들이 감귤열매에 발라놓은 농약 때문이란 거다. 예부터 우리조상은 감나무 열매까지도 까치밥으로 남겨둘 만큼 새들을 사랑할 줄 알 던 민족이다. 이제 어린아이 손에 쥐어도 모자랄 만큼 작디작은 동박새의 가녀린 생명마저도 농민의 저주 대상이 되고 말았으니 도대체 인간의 부끄러운 살상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이미 이 산하 들녘엔 그 많던 텃새들의 모습도 하나 둘 사라져 가는 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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