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역사, 그리고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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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소설가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제주도민들이 체험한 제주4·3이라는 역사적 현실도 역사적으로 재구성할 당위성을 갖는다. 과거 우리는 제주4·3을 역사적으로 얼마나 폄훼하였는가?

시인 김명식은 1988년 시대의 명작 ‘제주민중항쟁’을 여러 권으로 엮어내더니, 1989년 4·3서사시 ‘유채꽃 한 아름 안아 들고’를 연작으로 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4·3문학의 대명사이며 이정표였다.

시인은 제주4·3을 둘러싸고 발화되던 문학의 위력이 문학적 상상력을 절제하면서 제주민중의 관점에서 역사적 상상력에 따라 ‘사건’을 충실히 재현했다. ‘송씨네 할머니도 어머니도 누나도/ 김씨네 숙부도 큰고모 작은 고모도/ 고씨네 동생도 오빠도 아기도/ 12명이 되고 100명이 되고/ 하릇밤 한 날 한 시/ 타고 타고 불에 타고/ 하룻밤 한 날 한 시/ 벌겋게 타는 산’ - ‘교래리 사람들’ 중에서

제주4·3 당시 집단 양민 학살의 참상과 상흔을 그 실체를 통해 당시 제주민중들이 가슴에 품고 희생돼 갔을 때 지녔던 명백한 반외세적 의식을 작품화한 김명식 시인. 오랫동안 잊혀지기를 강요당해왔던 제주4·3의 비극적 역사를 사회적으로 인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금기의 현대사를 문제 삼으면서 제주민중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이제 당당히 증언해야 할 때임을 역설했다.

문학은 언어를 표현매체로 하는 예술이며, 역사는 인간이 경험한 과거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것을 뜻한다. 문학과 역사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공통점이 많다. 문학과 역사는 허구와 사실이 조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인 김명식은 작품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물론 문학은 상상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인 성격을 가진 반면, 역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썼다는 차이점이 있다. 역사도 어느 정도의 허구를, 문학도 사실을 바탕으로 쓴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 문학과 역사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역사가는 실제로 일어난 것을 이야기 하고, 시인은 일어 날 수 있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문학의 역할과 역사의 역할은 동일할까? 그리고 4·3문학과 4·3역사는 제주4·3의 진실을 밝히는 데 과연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문학과 역사는 도일선상에서 인간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합류, 곧 문사철(文史哲)의 인문정신이 제주4·3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작가 박태순은 그의 장편소설 ‘어느 사학도의 젊은 시절’을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합류, 곧 문사철(文史哲)의 인문정신이 아니면 유신독재를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고백했다. 작가는 현상적인 현실에만 매몰돼서는 안 되며 역사적인 현실의 서사구조 탐구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의 한 주인공이 1950년대의 절망 속에서 역사학도가 되려는 꿈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 실제로 역사학자가 돼 본격적으로 독재사회 연구에 들어서고 그리고 독재사회 극복 명제를 구현해 나가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최근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 확정된 4·3 진상보고서는 지난 세월 망각을 강요당한 제주도의 한 역사가 공식 기억의 담론으로 채택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반공 이데올로기로 덧씌워진 ‘공산폭동’이란 주홍글씨를 지우고, 국가가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을 인정하였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변방의 역사가 공식적인 역사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문학과 역사는 진실을 파헤치는 면에서 동일하며, 그렇지만 문학은 인간의 삶을 통해 진실과 허구를 제시하고 역사학자는 인간의 삶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정의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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