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대학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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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남 제주대학교 교수 / 논설위원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엊그제 발표되었다.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고민도 시작되었다. 좋은 점수를 얻어 효자 노릇을 하는 수험생도 있고 기대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아 부모 마음을 속상하게 하는 수험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누가 효자인지는 나중에 봐야 안다.

조선 영·정조 시대의 삶을 그려온 화가 김홍도의 ‘자리짜기’라는 그림을 보면, 마치 지금의 우리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아버지는 열심히 자리를 짜고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고 있다. 두 분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서로 얘기조차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방안에 있는 아들의 책 읽는 소리만 가득하다. ‘자리짜기’풍속화가 들려주는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우리도 같다. 자식의 책 읽는 소리처럼 부모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하는 노래가 없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자식의 모습만큼 부모의 피로를 풀어주는 그림도 없다. 자식자랑은 팔푼이나 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좋은 대학에 합격하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입이 근질거려 친구를 불러내어 밥도 사고 술도 사는 것이 부모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효자와 불효자의 차이가 크지 않다. 대학에 가면서 효자와 불효자의 차이는 벌어지기 시작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은 자식의 욕심과 학비와 생활비를 걱정하는 부모 사이에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울로 대학을 보낸 효자의 정의는 그리 어렵지 않다.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고 장학금 받으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부모에게 용돈이라도 보낼 수 있으면 효자다. 제주출신 사위나 며느리를 얻으면 덤을 얹어주는 효자다.

원희룡 전 의원은 서울로 대학을 보내 성공한 대표적인 효자일 것이다. 30년 전에 학력고사도 수석하고 서울대도 수석으로 합격하고 사법고시도 수석하고 내로라하는 정치가가 되었으니 남들이 부러워하는 효자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다고 다 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로 올려 보낸 자식이 불효자로 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다. 등 꼴 빠지게 번 부모의 돈으로 대학을 마치고 취직한다고 몇 년을 허송세월을 보내고 제주에 취직자리가 있는지 기웃거리는 불효자다. 부모는 동네 부끄럽다고 고개를 들지 못한다.

제주에서 대학을 다녀도 부모가 자랑하는 효자가 나온다. CJ 제일제당의 강석희 부사장이다. 제약사업부문 대표도 맡고 있고 CJ CGV 대표이사도 역임했다. 얼마 전에는 스위스 헬신헬스케어사의 대표적인 항암 보조치료제인 ‘네투팔로(Netu-Palo)’독점계약도 성사시켰다.

아마 애월 출신인 강석희 부사장이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부모가 자랑할 만한 효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제주대학 농수산학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CJ에 입사한 후에 강 부사장의 ‘매직 경영’과 자신의 열정을 직원들에게 흩뿌리는 ‘열정 바이러스’는 머지않아 제약업계 1위가 될 거라는 기대도 갖는다. 학비도 거의 들지 않았으니 진짜 알짜배기 효자다.

예전에는 자식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안쓰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식당을 나올 때 신발 끈을 오래 매는 사람은 왜 그런지 얘기하지 않아도 안다. 월급을 다 털어서 서울로 보내기 때문이다.

학부모와 수험생은 어느 대학에 원서를 낼 것인가 가슴을 졸일 시기이다. 서울에 있는 이름난 대학이라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지는 않는다. 제주에 있는 대학이라고 자신의 목표를 낮게 잡을 것도 아니다. 대학이 어디에 있든 부단한 노력과 자기 계발이 꿈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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