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계절에 하얀 눈의 추억을 떠올리다
대선의 계절에 하얀 눈의 추억을 떠올리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문영택. 제주도교육청 / 수필가
휘날리던 눈도 숨을 고르나 보다. 가지에 앉은 새들도 신나는 지 눈을 털고는 다른 나무로 날갯짓 한다. 어제 본 잔설이 흑백의 혼합색이더니, 오늘은 온통 하얗다. 어제의 잔디밭이 채색이라면 오늘의 그곳은 눈으로 덮인 백색의 세상이다. 백색이 품는 채색 중에서도 나는 잔디색이 좋다. 푸르름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길손 드문 산길에 발자국이 선연하다. 누군가 하얀 눈을 밟으며 이 길을 갔나보다. 그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눈길을 걸었을까. 하얀색이라서 사람들은 눈을 좋아하나 보다. 꾸미는 일을 밝고 희게 하면 허물이 없다지 않은가. 나의 바탕이 더욱 희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하얀 눈에서도 배우련다. 사람들이 눈을 반기는 것도 내 안의 채색을 백색으로 꾸미고자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리라.

눈의 마음은 아이들의 마음을 닮았나 보다. 눈을 소재로 한 동요들을 떠올리니 말이다. 송이송이 하얀 송이 소리 없이 내려오는 하얀 눈송이, 나무에도 들판에도 지붕 위와 장독위에도 소리 없이 보슬보슬 내리는 눈…. 또한 눈은 마음의 사진첩에 보관된 그리운 이들의 추억을 나르는 배달부인가 보다.

고향 마을 온천지가 눈으로 덮여 며칠간 꼼짝할 수 없었던 날이었다. 동생들과 화롯불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를 귀 쫑긋 듣고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길을 내려 집 주변에 쌓인 눈을 걷어내고 있었고, 눈이 반가운지 하늘 보며 컹컹 짖는 강아지 울음소리도 들렸었다.

어른거리는 정겨운 모습들 …. 눈의 마음은 이런 것이리라. 눈길을 거닐며 행복의 씨앗이 무엇인지 헤아린다. 스티븐 코비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채색하는 것이 그것이란다.

한라산 기슭에 위치한 이곳은 제주시가 내려다보이고 한라영봉이 올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과 들은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 한다. 그래서 이곳을 열안列雁지라고도 부른다. 구름에 가렸던 한라영봉에 햇볕이 살짝 비추자 순백색의 정상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정상의 눈은 초봄까지 하얀 빛을 발할 것이다. 제주선인들은 이를 영주십경 중 6경인 녹담만설이라 이름 지었다.

구름 사이로 영롱한 햇살이 내려오니, 하얀 눈밭에서 품어져 나오는 빛깔의 파노라마에 눈이 너무 부시다. 숨이 막힐 지경의 이곳이 곧 설국이고 천상이다. 내 삶의 한 순간이 눈길에서 황홀하게 빛나고 있다.

눈 덮인 잔디밭에서 노루들이 떼 지어 노닐고 있다. 눈 사이사이로 보이는 먹이를 찾아 걸음걸음 움직이는 모습이 한가롭기 그지없다. 휘파람소리라도 들려주면 짐짓 듣는 척한다. 사이좋은 노루 가족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평화가 내게도 물들듯 밀려온다. 눈 아래 누인 잔디를 온 몸으로 헤집는다. 푸른 잔디는 눈이 덮여 춥다 할까, 이불이 덮여 포근하다 할까. 그들도 서로 소곤대며 겨울을 내고 있겠지. 그리고 봄이 오는 소리도 듣고 있겠지.

눈길을 노루처럼 거닐었던 하루가 저문다. 쌓이는 눈처럼 추억도 하나 둘 쌓인다. 이제 내 안 세월의 시계침도 많이 움직였거늘. 흐르는 것이 세월이고, 덧없는 것이 인생이다.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이기에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치열하게 펼쳐지는 대선의 계절도 이제 곧 지나갈 것이다. 지금 그 사람들도 기억이나 망각 속에 머물게다. 눈길을 거닐며 자연의 소리, 양심의 소리를 듣듯 대선의 여정에서‘백마 타고 오는 초인’들의 순백색의 소리, 국민을 섬기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길 소원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