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술의 장인 정신
허벅술의 장인 정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영환 제주대학교 교수 / 논설위원
제주를 대표하는 허벅술이 지난 11월 영국런던에서 열린 국제주류품평회(International Wine and Spirit Competition)에서 증류주 부문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경사는 로또복권의 당첨처럼 운 좋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가을날의 황금 들녘이 농부의 정성과 하늘의 도움으로 이뤄짓듯이, 허벅술의 세계적 명품 등극에는 무엇보다도 장인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거기에 전통주에 대한 도민의 사랑이 더해졌기에, 그 가치가 더욱더 빛난다고 할 것이다.

고려말에 몽고군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제주도에는 목마장(牧馬場)을, 그리고 안동과 개성에는 병참기지를 두었었는데, 우리의 전통 증류식소주인 고소리술, 안동소주 및 개성소주는 그 당시 몽고인들로부터 증류주 제조법을 전수받아 현지에 적응시킨 결과로 생겨났다. 고소리술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적 양조설비와 보다 나은 원료의 사용, 그리고 새로운 양조기술의 접목으로 품질을 규격화, 고급화시켜 탄생된 것이 바로 허벅술이다. 허벅술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질박한 포장 용기인 허벅모양의 토기는 제주인을 닮았다. 허벅술은 제주인의 자랑이라 할 만하다.

허벅술 생산 이전에 과거 62년간 양조기업으로 대를 이어온 ㈜한라산의 끈기가 없었다면, 허벅술의 명품 등극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너도나도 붐이 일다가 어느샌가 잊혀지고 마는 유행가 같은 제품이 아니라, 인고의 세월을 거쳐 탄생해 끈끈하게 명맥이 이어지는 제품이 장수한다. 명품은 역사의 산물이다.

허벅술의 성공사례를 보면서 이에 대비되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 제주도의 맥주사업이다. 제주도의 역사나 문화와는 거리가 먼 맥주사업을 공공기관이 주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이리저리 아무리 곱씹어 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외부에 드러난 사업계획과 추진과정을 검토해볼 때, 공익성도 수익성도 없어 보인다. 되레, 공공기관이 민간기업의 사업영역을 침범하여 민간기업과 경쟁하려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보기에 민망하다.

일면, 농민이 재배한 맥주보리를 수매해서 농가소득을 증대시키려고 한다는 명분이 그럴 듯 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제주산 맥주보리를 사용한다고 할 때, 지금 당장 이용하려고 하는 한남리 감귤공장의 파일럿플랜트(pilot plant) 설비의 생산량은 연간 10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하우스맥주 레스토랑사업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생산하고, 생산 현장에서만 판매할 수 있는 사업, 맥주의 외부 반출 불허) 수준으로, 맥주보리 소요량은 연간 약 20 톤이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000만원 수준 밖에 안 된다. 계획대로 사업이 잘 풀려서, 가까운 미래에 맥주 생산설비를 백배로 늘린다 해도, 연간 20억원 수준의 맥주보리를 수매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쩜, 감귤맥주를 제조한다면 감귤소비라는 공공기관으로서의 명분이 설까? 과거 10년전, 우근민 지사가 도정을 이끌 당시, 감귤맥주사업을 개척하자고 제안했더니, 뿌리치고 미용화장품 산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던 사람들…. 맥주사업이 단기간에 승부를 낼 수 있는 사업도 아닌데, 이런저런 조언을 마다하고, 책임지고 성공시키겠다고 장담하고 있으니, 이를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게다가 공공기관에서 맥주 판매장까지 운영하겠다니, 유흥업에까지 진출해서 민간사업자들과 경쟁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제주맥주만 팔아서는 손해 볼 우려가 있어서, 타사 맥주제품과 안주를 팔아서 이익을 남겨보자는 속셈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