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한 일에 매료되어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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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나는 뭔가를 만들 때가 행복하다.

과수원 방풍림이 너무 웃자라서 중간쯤으로 잘라냈다. 삼나무의 곧은 줄기라 제재만 해 두면 내 요긴한 장난감이 되겠다 싶어 판자로, 각목으로 오려다가 농막에 쟁여 두었다.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이것들을 꺼내어 공작 삼매경에 빠져든다.

어린 시절 수수깡이나 대나무로 안경도 만들고, 새집도 만들며 무아지경에 빠져 지냈던 기억이 난다. 때론 통나무를 톱질하여 꼬마수레를 만들기도 했다. 연장으로 손이 다치거나 발등을 찧어 고생한 적도 많았다. 하루는 낫으로 대나무를 다듬다가 왼손 검지를 베었다. 뼈가 들어날 정도로 크게 다쳐 오랫동안 앓아 끙끙거렸다. 그 때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얼마나 아팠으랴.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그런데도 이 나이까지 만드는 재미에서 헤어나질 못하니 거기엔 필시 어떤 마력이 있음이다.

내 손으로 투박하게 만들어진 식탁과 책상. 그 위에서 식사하고 글을 쓰는 일이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다. 요즘은 기묘하게 생긴 자잘한 돌멩이를 주어다가 나무를 정성스레 다듬어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그것들을 붙박아 감상하는 재미에 빠졌다. 태반은 성에 차지 않아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지만 내 손재주를 스스로 감탄하며 애지중지하는 것도 있다.

문명의 권역을 벗어난 오지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이 그 고된 삶을 선택하는 이유도 아마 나와 같은 희열 때문이리라. 오두막을 짓고, 구들장을 놓아 거기다 군불을 지펴 등이 따스해 질 때의 그 희열, 자연이 베푸는 감동 수준의 노작의 대가(代價)….

하긴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아차릴 유명인 가운데도 손수 만들고 가꾸며 사는 삶을 즐겼던 이들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연암 박지원은 제자나 손님에게 직접 밥을 지어 대접하였고, 떨어져 사는 아들들에게는 자신이 직접 만든 먹을거리를 챙겨 보내기도 했다 한다. 명문가의 선비가 부엌에 드나드는 게 상상도 안 되던 시대에.

내 글쓰기의 모티브를 제공한 ‘월든’이란 작품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도 자연에서의 삶을 즐겼다. 명문 하버드를 졸업한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했다.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다고 뉘우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자연 속에서 스스로 꾸려가는 주체적이고 자연적인 삶을 산다”고 했다.

무소유의 삶으로 우리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법정스님도 송광사 뒷산에 암자를 손수 짓고 살았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채마밭도 가꾸고, 소도구도 직접 만들어 쓰면서.

스님은 “내가 몸소 체험한 것, 그것만이 참으로 내 것이 될 수 있고 나를 이룬다"고 했다.

하루를 살더라도 제 삶을 스스로 건사하며 체감하려 했던 사람들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의 삶은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는 도를 넘어 그것들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손에 물을 묻히거나 허리 굽혀 일하고 청소하는 일 따위를 천하게 생각하고. 허명을 좇아 동분서주하거나, 몸치장에다 수다 섞기, 다향에 젖어 사는 게 훨씬 우아하고 고고한 삶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착시이거나 착각일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에 매료되어 땀 흘리며 사는 삶, 어쩌면 그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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