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안일한 대처가 혈액 관리 `구멍'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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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의 헌혈 혈액에 이어 말라리아 등 법정 전염병 감염자에게서 채혈된 혈액 1천200여명분이 다른 사람에게 수혈된 혈액관리 사고가 다시 발생했다.

에이즈 환자와 법정 전염병 감염자의 혈액이 다른 사람에게 수혈되는 사고가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이같은 사고의 반복은 혈액관리 시스템의 근본적인 허점과 당국의 안이한 대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보건 당국은 말라리아를 제외한 다른 법정 전염병의 경우 수혈로 인한 2차 감염 가능성이 없고 말라리아도 수혈로 인한 2차 감염 사례가 2001년 이후 보고되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만, 주먹구구식 관리 체계와 무성의한 당국의 태도가 국민의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제기능 못하는 형식적인 문진
대한적십자사가 전재희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법정전염병 관련 헌혈현황' 자료를 보면 권모(43)씨의 경우 지난 2003년 5월 23일부터 이듬해 8월 31일까지 1년 3개월 동안 무려 31번의 헌혈을 했다.

권씨는 헌혈을 시작하기 2개월 전인 2003년 3월 10일 법정 3군 전염병인 브루셀라증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의 문진 기준에 따르면 브루셀라 환자는 완치 후 2년 동안 헌혈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권씨가 2주에 한 번 꼴로 헌혈센터를 찾았지만 그가 브루셀라에 걸렸었다는 것이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헌혈센터에서 헌혈자가 기록하는 문진표에는 분명히 `최근 1년 사이에 입원이나 수술을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비롯해 각종 전염병 감염 경력을 점검하는 항목이 있다.

결국 헌혈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안내원이 권씨가 31번이나 헌혈을 하는 동안 한번이라도 제대로 질병 경력에 대해 물어봤다면 분명히 그가 헌혈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혈액원의 혈액검사도 `구멍'
채혈된 혈액은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에서 에이즈, B형 간염, C형 간염, 매독, 말라리아 등 5가지 항목의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있지만 기준과 원칙이 없는 것도 문제다.

특히 말라리아의 경우 혈액원에서 검사하는 항목임에도 불구하고 감염자 38명이 헌혈에 참가했고 22명분이 수혈용으로 혈액원에서 출고됐다는 점에서 혈액원의 검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보여줬다.

문제는 말라리아의 경우 휴전선 인근에서 주로 감염된다는 이유로 충북, 울산, 전북, 강남 등 중부와 남부 지역에 있는 혈액원에서는 검사 항목에 빠져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부와 남부 지역에 사는 사람이 휴전선 지역을 여행했다가 말라리아에 감염될 수 있고 말라리아에 걸린 군인이 휴가를 나와 헌혈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부와 남부 지역의 혈액원이라고 해서 말라리아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말라리아 감염자 혈액 22명분이 출고된 곳을 보면 전남, 부산, 순천, 충남 등 대부분 남부지역이었다.


◆보건 당국간 연락체계 미비
이번 사고는 사실 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져있다면 발생할 수 없는 사고다.

대한적십자사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법정전염병 감염자 명단을 받아 확인했거나, 질병관리본부가 법정전염병 감염자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대한적십자사에 제공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면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현재 에이즈나 B형, C형 간염 등에 걸린 환자의 경우 `헌혈유보군'으로 분류돼 헌혈센터의 전산망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말라리아와 결핵의 경우 완치후 3년, 성병은 완치후 1년 등 헌혈을 받지 못하도록 기간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법정 전염병도 이 기간에는 `헌혈유보군'으로 정해 헌혈센터 전산망에서 즉시 확인이 가능해야한다는 것이 전 의원측의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작년에도 똑같은 혈액 부실관리 사고를 겪었지만 혈액관리와 관련된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일한 대처에 대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전염병 감염 혈액 수혈 2차 감염 여부
보건당국에 따르면 말라리아를 제외한 다른 법정 전염병의 경우 수혈로 인해 2차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말라리아의 경우도 2차 감염 가능성이 있지만 2001년 이후 수혈로 인한 감염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또 말라리아는 치명적이지 않아 감염됐더라도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날 긴급 혈액관리위원회를 열고 말라리아 감염 혈액을 수혈받은 환자에 대해서는 추적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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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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