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서럽지 않기를
귀가 서럽지 않기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오을식.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 소설가
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 끝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 지금은 다만 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

근래 자주 읊조리는 시 '귀가 서럽다' 중 일부입니다. 이 시는 제주에 뿌리 내리러 들어왔다가 고향 문화예술계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 현재 장흥 천관문학관을 애써 꾸리고 있는 이대흠 시인의 절창입니다. 시인은 '꽃 같은 잎 같은 뿌리 같은/ 인연들을 생각하니',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와 귀가 서러웠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나는 요즘 이 시와는 다른 까닭으로 귀가 서럽고 마음이 서럽습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들 때문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노동자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씨, 현대중공업 하청기업 노동자 이운남 씨, 청년노동활동가 최경남 씨, 한국외대 노조지부장 이호일 씨 등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니, 그들이 처한 절망적 상황이 어떠했을지 짐작은 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목숨을 끊는 극단의 선택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던 것인지 가슴 저미는 안타까움에 말문이 막힙니다.

귀를 서럽게 하는 소식은 또 있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 인선이 그러합니다. 대통령 당선자의 첫 번째 인사여서 관심이 높았던 인선에서 당선자는 뜻밖의 인물을 선택했습니다.

임명된 사람은 언론과 정치계를 여기저기 기웃거린 전력이 있는 대표적인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로, 이번 대선 기간 방송에 나와 야당 후보들을 향해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낸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를 출연시킨 채널은 한국방송통신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포함한 제재를 4번이나 받을 정도로 그의 막말은 고약했고 일방적이었습니다. 국민대통합의 기치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출발하면서 어떻게 그런 사람을 인수위의 입으로 임명할 엄두를 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막말 인사가 성은(?)을 입었다는 사실에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이번에는 좀 특별한 직업을 가진 분이 막말 릴레이를 이어갔습니다. 성직자인 어느 스님께서 텔레비전 생방송에 나와 저잣거리 싸움판에서나 희귀하게 볼 수 있는 욕설과 막말을 쏟아낸 것입니다. 얼마나 저급한 막말이었는지 인터뷰가 중단되는 방송사고로 이어졌습니다. 대체 성직에 계신 분까지 왜 이러는 것일까요. 근래 죽비로 입을 맞아야 정신을 차릴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합니다.

경제 관련 소식도 귀를 서럽게 합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해서 발표했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경제가 쉬 좋아질 것 같은 징후가 보이지 않아서겠지요. 덧붙여 청년층과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고용악화가 나타나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내놓고 있습니다. 이는 올해도 경제적 약자들의 삶만 더 고단해진다는 의미겠지요. 작년에도 서민들의 삶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는데 올해도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니 이 또한 귀를 서럽게 하는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밝아온 2013년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새 정부는 국민의 귀에 서러움이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공약한 정책들을 성실히 이행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