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책임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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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 / 소설가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누구였을까?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재임한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 전 대통령이다. ‘이사벨 페론’은 1973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남편인 ‘후환 페론’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되어 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인 ‘후환 페론’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채운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이 경우는 국민들의 지지로 대통령이 된 사례라 보기에는 조금 거리가 멀다.

지금도 제주4·3을 이야기하면, 움쩍하며 한발 물러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해 11월 6일 하와이 문화센터에서는 섬 평화문화 콜로키움이 열렸다.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미군점령 평화시대의 한국제주 양민대학살’이 주제였다. 제주대표들도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에릭 야마모토 하와이대 교수는 미국 정부가 제주4·3의 도민 대량학살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역설했다. 한국과 미국의 학자, 그리고 자신의 연구로 제주4·3이 명백하게 밝혀졌기 때문에, 오바마 미국정부가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주4·3의 역사적 한을 푸는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의 공동사업에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가 같이 참여해야 함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두 나라가 4·3피해자에게 배상하고 사과하고, 그래서 사회적 치유를 하지 않는다면 4·3의 배상은 불확실하다는 주장이다.

도민들은 과거의 ‘빨갱이의 섬’이란 낙인 때문에 가슴앓이를 해왔다. 1948년 광란의 바람은 수많은 도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갔다. 하지만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불을 붙였다.

우리들은 알고 있다. 일부 정치세력이 제주4·3을 ‘폭동’, ‘빨갱이’등으로 묘사하면서, ‘제주4.3위원회 폐지논란’, ‘교과서 왜곡’등의 예를 남겼다. 역사를 ‘사실’로 접근하지 않고 ‘정치’로 해석하려는 몰이해가 여전히 제주도를 ‘반역의 섬’으로 규정지으려 하였다.

그렇지만 그 동안 제주도민들은 꿋꿋하게 버티면서 제주4·3의 해결을 기다려왔다. 지난 대선 당시 어느 후보가 ‘제주4·3완전해결’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제주4·3으로 최소 3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은 이제 공론이다. 당시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누가 시비를 걸어도 우리가 해야 할 책무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 문제이다.

제주4·3은 언제 일어났는가? 제주4·3은 미군정 당시 일어났다. 제주4·3은 미군정 당시 일어난 사건이고, 학살이 진행될 당시 대한민국은 국가로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제주4·3 당시 군·경을 장악한 당사자는 누구인가? 물론 미국이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의 승인 없이는 군사이동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주4·3은 미국과 미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음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승만 은 국무회의에서 강경진압작전을 지시했다. 이승만도 한국정부 수반이며 국군통수권자로서 과잉진압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정부에서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에도 초토화의 책임은 당시 정부와 주한미군사고문단에게 있다고 판단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통수권자이며, 미군은 당시 한국의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승만의 다음 발언은 강경진압작전이 미국과의 교감 속에서 벌어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가혹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제주 4·3 사건을 완전히 진압해야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미국의 원조를 받아낼 수 있다.”

이승만은 불법계엄령을 선포하고, 1949년 1월 국무회의에서 ‘미국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발언하였다.

미국정부는 세계대전 후 미국계 아시아인에 대한 강제구금의 피해자 12만 명에 대하여 배상을 하였고, 1993년 하와의 불법전복과 인권학살에 대하여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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