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의 역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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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소화기내과전문의

저렴한 내시경 수가와 건강 검진의 열풍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내시경을 하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 되었다. 최근에는 내시경을 한다는 의미가 단순히 병을 진단한다는 개념보다는 치료적 측면으로 오히려 더 부각되고 있고 치료 내시경에 대한 분야가 점점 발전하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치료 내시경의 입지는 전 세계적으로 단연 앞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내시경의 과거는 어떠했을까?

 

거슬러보면 내시경(endoscope)의 최초 발명은 19세기 초(1805년) 독일의 필립 보찌니(Bozzini)라는 사람이 빛 전도체를 이용한 관을 통해 요로, 직장, 인두부를 관찰한 것이 시초이고 이어 1868년 독일의 내과의사인 쿠스마울(Kussmaul)에 의해 처음으로 위내시경이 개발되면서 소화기내시경 분야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1911년에 독일의 호프만(Hoffman)이라는 광학 기술자가 일본의 모 회사와 합작하여 구부러지는 섬유내시경을 개발하였다.

 

1983년 미국의 모 의료기기 회사가 내시경을 통해서 화면에 전달되어 모니터에 비치는 것을 보게 되는 전자 내시경을 개발하였으며 화면을 확대 혹은 작게 할 수 있어서 병변을 자세히 관찰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사용하는 내시경이다.

 

뿐만 아니라 대장을 관찰 할 수 있는 대장 내시경, 소장을 볼 수 있는 캡슐 내시경이 개발되었으며 췌담관 내시경으로 췌담도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1950년대에 우리나라에 처음 보급된 내시경은 굵기가 지름 1.2㎝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내시경 0.5~0.6cm보다 2배나 굵었고 지금 내시경처럼 굽혀지지 않았다.

 

딱딱한 막대기형으로 된 내시경이어서 수술실에서 환자에게 전신마취를 하고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0년대 후반 조기 위암을 내시경으로 처음 진단했고 90년대 중반이 되면서 진단하는 것을 넘어서 내시경으로 치료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위점막절제술(EMR), 내시경절제술(ESD)등의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정도까지 와 있다.

 

최근 신개념으로 NOTEs (Natural Transluminal Endoscopic Surgery)라는 것이 있는데 자연 개구부인 입이나 항문 또는 질, 요도 등을 통해 내시경을 진입시키고 내장, 즉 식도, 위, 질, 방광 그리고 대장 등에서 절개를 한 후 내시경을 흉강 혹은 복강 내로 진입하여 외부 상처 없이 수술을 하는 새로운 개념이 나오고 있는데 아직 개발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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