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정형외과 의사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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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림/정형외과전문의

직업이 관절치료 전문의사인 만큼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진료 온 환자에게 관절염과 연골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 누가 보면 맨날 같은 말만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항상 제주라는 지역의 특수성과 연령, 직업 등을 고려해 내원한 환자에 맞춤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

 

제주도는 생활 스포츠를 즐기기 매우 좋은 환경이라 젊은 사람들은 과도하거나 무리한 운동에 조심해야 한다. 유난이 돌이 많은 제주의 오름이나 한라산의 등반 시에는 무릎 연골을 다치는 경우가 많고 배드민턴 동호회 활동을 너무 열심히 하면 어깨 힘줄을 많이 손상시킨다. 무리한 골프 스윙은 팔꿈치와 손목, 무릎에 잦은 손상을 가져온다. 중년이 되면 관절이든 힘줄이든 노화현상이 시작되는데 젊었을 때의 근로 강도를 유지하면 곤란하다. 체력 관리한다고 갑자기 시작한 등산이나 조깅도 무릎에는 무리가 가기 쉽다.

 

귤을 많이 따기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하면 어깨와 목 관절, 허리관절에 무리가 오게 되고 마늘 농사 등 쭈그리고 앉아 밭일을 오래하면 무릎의 뒤쪽 연골판이 쉽게 손상된다. 관절에 오는 통증을 소위 ‘뼈주사(스테로이드 주사)’로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나중에 약의 부작용으로 크게 후회하게 된다.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의사생활을 해왔던 내가 제주에 내려와서 관절염환자를 진료하며 처음 느낀 것은 분노에 가까웠다. ‘이렇게 무릎이 망가졌는데도 그저 약 먹고 주사 맞고 참으면서 일만 하고 살아왔다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 뭐 이런 생각이었다. 실제로 육지 같으면 벌써 시술이든 수술이든 치료해서 좀 더 좋아졌을 무릎이나 어깨인데 치료 적기를 놓치신 분들이 너무 많았다.

 

제주 내려와 관절센터 원장으로 1년 가까이 진료하면서 많은 수술을 하였다. 관절연골을 다듬거나 연골판을 절제 또는 봉합하는 수술, 관절연골에 미세천공을 하거나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관절연골 재생을 돕는 수술, 다리뼈를 교정하여 관절염의 진행을 늦추는 수술, 그리고 무릎 인공관절 수술 등 서울의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시행하는 수술의 수준과 결과를 유지하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좋은 결과도 얻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를 찾는 분들의 무릎에는 오랜 사연이 있고 눈물겨운 아픔이 있고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1년 내내 종목을 바꾸어가며 밭일하고 틈만 나면 물질 하러 들어가고 젊어서도 늙어서도 자식들 돌보느라 쉴 틈 없는 어르신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관절 연골이 그리 상하도록 왜 치료를 못하셨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되었다. 제주는 육지와는 많이 다르다는 선배 의사의 말도 떠올랐다.

 

가능하면 수술을 피하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적게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점점 커진다. 제주의 특성과 제주 도민의 삶을 이해하고 진짜 제주 사람이 되어야 어르신들의 관절뿐 아니라 지친 영혼까지 치료할 수 있겠구나 하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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