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無所有), 그리고 비움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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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 제주대 건축학 교수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

위의 구절은 1976년 출간된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의 일부분이다. ‘무소유(無所有)’란 불교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에서 비롯된 가르침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없다는 의미이다. “많이 갖는 것은 곧 얽매이는 것”이라는 스님의 통찰은 어깨에 내리꽂히는 죽비처럼 물질문명에 빠진 현대인들에게는 따끔하지만 그만큼 큰 울림으로 남아, 담담한 향기를 주고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

무소유 정신에서 비롯된 지나친 소유욕에 대한 성찰은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적지 않은 변화를 주고 있다. 끝없이 채우려는 욕망은 행복이 아닌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역설적이게도 자꾸 비우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제주올레에서 시작된 걷기여행 열풍에서도 이러한 무소유 정신과 현대인들의 비우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온종일 걷고 또 걸으며 물질에 치우친 도시 속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시도인 것이다.

무소유 정신은 우리의 전통건축에도 배어 있다. 우리네 옛집들의 마당은 일본이나 서양의 마당이 특정인에게만 점유되거나 공간의 용도가 확정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늘 비어져 있는 상태로 아무나 접근하여 쓸 수 있는 장소였다. 추수철이면 사람들은 마당에 모여 벼나 콩 타작도 하고 갖가지 수확물을 늘어놓고 말리기도 했으며, 그렇지 않을 때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나 어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러한 마당은 지금으로 치면 동네 회관이나 마을 정자나무처럼 가족, 이웃과의 소중한 놀이와 소통의 공간이었다. 때때로 크고 작은 충돌이나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더 많은 날이 웃음꽃으로 채워졌을 테다.

하지만 마당과 같은 비움의 여백은 우리의 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아파트 건설이 제주를 휩쓰는 동안 이웃과의 소통 역할을 담당하던 마당이나 골목에는 건물이 들어서거나 아니면 도로 건설로 인해 아예 흔적조차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무소유적인 비움의 공간을 중심으로 자연과 소통하고 인간과 관계를 맺던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운 가치를 버리고 높고 화려한 무언가를 쫓으며 마당을 없애고 있는 우리인데, 외국인들은 오히려 비움이야말로 궁극적 아름다움이라며 우리 선조의 마당을 다시 찾고 있다.

이러한 비움의 가치는 도시에서도 빛날 수 있는데 공원이나 광장 등이 그렇다. 빼곡하게 도시에 들어찬 건물들 사이에서 공원이나 광장 같은 빈 공간은 도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느 공간보다도 훨씬 다양하고 생기 넘치는 활동의 무대가 된다. 우리의 도시 속 공동체와 삶의 질은 이러한 비움의 공간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제주도가 새로 만드는 탐라문화광장이 도민들과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어떤 공간이 될지 기대가 된다. 동문로터리 분수대와 산지천 서쪽을 따라 각종 공연을 할 수 있는 주 광장과 테마정원, 생태하천, 세계음식테마거리 등이 조성될 계획이라고 한다.

무소유는 단순한 없음이나 공백이 아니다. ‘없음’은 ‘있음’의 창조적 모태로 우리 삶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무소유적 정신은 무한한 상상력이며 가능성이자 공존이며 미소다. 노자가 말했다. “만물은 유에서 생성하며 유는 무에서 나온다(萬物生于有 有生于無)”고. 하지만 우리의 도시건축에 있어 무소유적 비움은 아직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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