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데이트 - 세종갤러리 양미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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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인의 꿈 안고 역사의 뒤안길로

1988년 여름.
그해 8월 도내 문화예술인들은 흥분과 설렘 속에 세종미술관 개관 기념 작가 초대전을 지켜봤다.

그 후 14년.
세종갤러리(옛 세종미술관)는 오는 31일 긴 호흡을 해 왔던 시간을 마감한다.

지하 갤러리가 들어선 세종의원 건물주가 운영난으로 인해 내년에 매각키로 했기 때문이다.

갤러리를 찾은 지난 20일 세종갤러리 관장 양미경씨(36.서양화가)는 다음주 마지막 고별전을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4년의 역사를 담은 포스터전을 기획하고 있어요. 아마 뜻있는 전시회가 될 겁니다.”

지난 25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세종갤러리-뒤돌아 본 14년’을 가득 채우게 될 역대 전시 포스터와 신문 스크랩이 그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관장으로서보다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갤러리를 잘 운영하고 싶었는데….”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의 역할까지 담당했던 세종갤러리가 문을 닫는 데 대해 그는 무척 아쉬워했다.

“사실 세종갤러리가 지금까지 어려움 속에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초대 관장을 지낸 김순택 세종의원 원장님의 힘이 컸어요. 초창기에 환자를 진료하다 말고 하얀 가운을 입은 채 내려와선 대관업무를 볼 정도로 열정적이었지요.”

그 후 운영난 등의 문제가 겹쳐 1993년 세종갤러리는 폐관위기를 겪었다.
“사설갤러리의 중요성을 인식한 뜻있는 도내 미술인들이 나서서 ‘미술관 살리기 운동’을 전개해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해 냈어요. 전무후무한 일이었지요.”

‘제주미술사랑’의 재도약을 위해 ‘세종미술관’에서 ‘세종갤러리’로 바꾼 것도 그 때쯤이다.

탐라미술인협회 중심으로 미술인들이 꾸준히 마련한 각종 기획.특별전은 큰 힘이 됐다.

그는 “사설갤러리가 사라지면 지역 작가들의 생존도 위협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사설갤러리가 지역작가들과 관람객 간 중개.매개 역할을 넘어서 작가의 삶과 직결돼 있다는 것 때문이다.

1992년 7월 이곳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던 그는 문화예술 활성화를 꿈꾸며 1998년부터 미술관 운영을 맡았다.

“당시 여기서 개인전을 갖는 것은 모든 미술인들의 꿈이었어요. 저도 그 소망을 이뤘구요.”

탐라미술인협의회 창립전(1994년 1월)을 비롯해 제주옹기문화연구회 창립전, 제주판화가협회 창립전 등 굵직굵직한 전시가 이곳을 거쳐갔다.

전국 민족극 한마당 부대행사로 열린 ‘정신대 할머니 그림전-엉겅퀴로 살아’(1996년 10월)도 기록에 남을 만한 전시.

이곳은 미술인들의 해방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문학의 밤, 시화전, 예술제, 문학제 등 문학과 예술을 꿈꾸는 이들의 소중한 ‘다목적 문화예술 공간’이었다.

특히 세종갤러리는 제1회 제주 4.3 미술제(1994년 4월)를 비롯해 다양한 4.3 관련 기획전을 통해 금기의 4.3을 널리 알리고 대중화하는 ‘다리’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연일 관람객으로 넘쳐났던 강요배 화백의 ‘역사그림전시회-제주민중항쟁사’(1992년 4월)는 6년 뒤 강 화백의 ‘4.3역사화전-동백꽃 지다’(1998년 4월)로 다시 태어나 처절한 역사의 아픔과 흔적을 각인시켜 놓았다.

‘4.3 역사사진전-긴 어둠속을 지나’(1992년 4월)도 4.3 당시 미군에 의해 촬영된 포로수용소 사진 120여 점을 첫 공개, 화제를 모았다.

“4.3 기획전은 청년층을 비롯해 중.장년층까지 2000여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어요.”

지난 9월 미술가 주재환 선생(62)을 초대, ‘주재환 특별전’을 기획한 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제주미술의 산파 역할을 해 온 세종갤러리는 며칠 뒤면 숱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한 채 제주 미술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사설갤러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도내 미술인이 함께 통감해야 할 문제입니다. 미술관 문제는 미술인 스스로의 생존과 직결지어 고민해야 할 때가 됐어요.”

세종갤러리가 걸어왔던 흔적은 아쉽긴 하지만 ‘아름다운 폐관’으로 남을 것이다.

ㅇ세종갤러리는?
14년 동안 이곳에서 열린 전시회는 무려 560회. 한 해 30회가 넘는다.
김순택 초대 관장에 이어 화가 김순관, 박난숙씨 등 모두 네 명의 관장이 거쳐갔다.

마지막 관장 양미경씨는 만 5년을 맡았다.
서예가 현중화 선생과 도예가 허민자씨가 함께 한 ‘소암.심헌 도예전’(1988년 10월)을 비롯해 ‘조선시대 풍물사진전’(1989년 1월), ‘개관 3주년 기념 도내 작가(김광추 김인지 조영호 강태석) 유작전’(1991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전-‘물마루 넘어 황토재’(1994년 6월), 전국 우수기획전으로 선정된 ‘목긴 청개구리-제주습지전’(2000년 10월), ‘하늘의 별따기전’(2000년 10월) 등 숱한 화제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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