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 노트 - 김광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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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는 굴도 섬 그늘도 없다

내가 알기로 제주도 바닷가에 굴은 없다. 어린 시절 나도 시골 바닷가 마을에 살아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굴을 따러 다니는 사람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을 아낙네들 대부분이 잠녀였던 시절, 눈을 씻고 보아도 그녀들의 구덕에는 굴은 고사하고 그 껍질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해거름이면 어른 잠녀들이 전복, 소라, 문어, 해삼 등을 한 짐 가득 캐서는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에는 이모도 보였고 아직 잠녀라 할 수는 없지만 애기 잠녀 정도로 보면 좋을까 싶은 누나도 끼어 있었다.

돌팡에 부려 놓는 이모의 구덕에는 정말 전복, 소라, 해삼 그런 것이 들어 있었다. 허나 애기 잠녀 격인 누나의 구덕 속은 퍽이나 푸짐해 보였지만 내용물은 보말, 수두리 등 제주 특유의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물씬거리는 그런 것들이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끓여 얼마나 맛있고 재미있게 먹었던가. 바늘로 조금은 따가운 감촉이듯 느껴지는 표피를 쿡 찔러 돌리면 이윽고 나선형으로 풀려나오는 그 속살의 모습에 나름대로 재미랄 것 없는 큰 재미를 느끼기도 하며.

그런데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섬 집 아기)이라는 구절의 동요를 제주도 어딘가에 노래비로 세운다니? 제주도 정서와는 아주 다른 그 ‘섬 집 아기’를 제주도의 상징적인 노래비로 세운다는 발상은 참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서 무언가 우리 제주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듯한 떨떠름한 기분까지 느낀다. 아무리 국제화를 주창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우리 자신이 없고서는 세계도 없는 것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도 있잖은가. 우리(제주)의 것을 찾아 보편화시키는 작업, 그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래의 것을 무조건 거부하자는 국수주의적인 사고관은 아니다. 관건은 그 동요가 과연 우리 제주도의 정서에 알맞은가 하는 문제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제주도에 굴이 없다는, 섬 그늘이라는 표현이 낯설다는 점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뭐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속에 분명히 내재해 있는 제주도적 정서가 결여돼 있다는 가장 진하고도 고밀도의 음흉한 냄새, 그 냄새를 우리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방심했을 때 아무리 시시한 것이라 할지라도 역사는 두 눈을 부릅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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