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수첩 - 김석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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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떠 있는 이상향 마라도로 오세요

여름 휴가 첫날, 모슬포항의 물결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사투리들이 뒤섞인 삼영호는 서서히 항구를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대마난류의 작은 갈래가 ‘마라해협’을 통과하면서 비단결 같은 명주바다에 거친 조류가 한 줄기 띠처럼 흐른다. 모슬포항에서 가파도까지는 20분, 마라도까지는 40분 거리.

마라도 선착장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니 마라민박 주인이 바닷물에 녹슨 트럭을 끌고 마중했다. 몇 년 전부터 이곳이 관광지로 정비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야자수가 심어지고 새로 집들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모습은 거의 잃어가고 있었다.

마라도에는 학생 수가 3명인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장이 있고 한국통신 마라기지국이 있어 초고속 인터넷도 가능하다. 유명한 마라도 자장면 집도 두 군데나 있다. 그런데 해물자장면 한 그릇 값이 무려 1만원이라니.

저녁을 먹고 산책하다가 낯선 광경을 보았다. 아주머니 한 분이 혼자 똑딱선을 몰고 와서 활어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가파도 사람으로, 혼자 고기를 잡고 그것을 마라도 횟집에 판다고 했다. 제주도 여자가 억센 생활력을 갖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 아주머니처럼 대단한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마라도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이들에게 국토의 최남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라도의 무덤들을 다시 보는 것이었다.

15년 전 마라도에 갔을 때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무덤들이었다. 마라도에서 태어나 일생을 살고 그곳에 묻힌 사람들. 몇 안 되는 무덤들이었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잔디밭에 누운 그곳 사람들의 고단했던 일생이 떠올랐다.

이곳 사람들의 소망은 제주 본도에 묻히는 것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죽어서까지 저 숙명적인 수평선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조장도 반장도 매장도 수장도 풍장도 아닌, 마라도 사람들의 장례는 어쩌면 해장(海葬)이 아닐까.

돌아오는 뱃길도 마찬가지로 거울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돌아오면서 내심 바랐던 것은 파도였다. 바다 같지 않은 바다. 그러나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는 바다에 대해 내가 갖는 경외심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무덤을 보고 돌아오는 바닷길 밑의 저 충만한 생명의 비밀에 대한 원시적 상상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흔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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