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독립운동 바로 알고 바로 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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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수. 언어문화 제주어연구소장 / 前 교장
매년 3월은 우리를 일깨운다. 3·1절이 있기 때문이다. 3·1운동은 1910년 조선을 강점하고 억압과 수탈, 무단통치한 일본에 저항해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다. 제주에서도 독립운동은 이어져 조천을 중심으로 4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3월 16일 서울 유학생(휘문고) 김장환이 귀향해 서울의 3·1운동 상황을 숙부 김시범에게 알리면서 시작됐다.

이를 들은 김시범은 김시은·김장환과 함께 제주의 유림 김시우의 기일인 3월2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3월 21일 아침 조천 미밋동산에 김시범· 김장환 등 14인 동지와 조천, 함덕·신촌·신흥의 서당 생도 150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시작으로 3월 24일까지 이어진 이 운동은 김필원이 혈서로 ‘대한독립만세’를 쓰고 만세를 외치며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꽂았다. 김시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제주 성내로 행진하려다 경찰의 저지로 김시범과 김시은 등 13인이 체포되면서 1차 시위는 끝났다.

3월 22일에는 조천장터에서 백은선·등 200여 명이 모여 체포자 석방을 요구하며 2차 시위를 벌이면서 신촌리로 행진하다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3월 23일에는 조천 오일장터에서 백응선·김연배·이문천 등이 체포된 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3차 만세운동을 하며 함덕리에 도착한 후 만세동산으로 행진하다 이문천 등이 일경에 연행되면서 끝이 났다.

3월 24일 조천오일장에 나온 부녀자포함해 1500여 명이 모여 체포자 석방을 요구하며 4차 만세운동을 벌이다 주도자들이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운동은 제주전역으로 확산되며 만세를 외쳤던, 영원히 기억해야 할 역사에 빛나는 독립 운동이다. 아직도 일제의 독도영유권 만행 등이 자행되는 이 때 3·1독립만세운동은 우리 모두가 바르게 알고 전해야 할 필연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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