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야, 어쩌면 좋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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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 소설가
안타까워라! 한라산 노루의 사정이 정말 딱합니다. 제주특별자치도 환경도시위원회에서는 지난달 25일 ‘제주특별자치도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 조례안’을 수정 가결했습니다. 그 조례안을 행여 노루가 들여다본다면 기절초풍할 내용입니다. 우선 노루의 신분이 급전직하로 바뀌었습니다. 유해야생동물 3년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지요. 비록 한시적이라고는 하나 보호야생동물에서 졸지에 유해야생동물로 추락한 것입니다.

노루는 이제 올 7월 1일부터는 외출을 삼가고 근신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천방지축으로 뛰놀거나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 입을 오물거렸다가는 큰일이 납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노루를 본격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노루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별다른 천적이 없는 데다, 한라산의 영물로 여겨져 지난 30여 년간 그야말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태평성대를 구가했지요. 그러는 사이 개체수가 엄청나게 늘어서, 한라산 횡단도로와 중산간 도로에서 일주일에 교통사고로 죽는 노루의 수가 평균 2마리나 될 정도로 노루는 지금 흔한 동물이 되었습니다.

제주녹색환경지원센터가 2011년에 조사한 개체수를 보면 해발 600m 이하 지역에서 살고 있는 노루 숫자가 자그마치 1만7756마리나 됩니다. 이태 전보다 4875마리나 증가한 것이지요. 노루의 적정밀도는 100만m²당 8마리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제주의 밀도는 해발 500~600m에서는 45마리나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한라산은 지금 노루농장이나 다름이 없는 셈입니다.

이렇게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다보니 우리 농민들을 상대로 나쁜 일을 하는 노루도 많아졌습니다. 녀석들은 작년 한 해만도 271개 농가에 8억5300만원의 피해를 안기고 도망을 쳤으니 피해를 당한 농민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눈치가 빠르신 분은 노루의 유해야생동물 지정 소식을 듣고 벌써 입맛을 다시면서 군침을 흘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루의 육질과 육즙은 예로부터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지라, 제 발로 내려온 노루를 잡아서 전골로 끓이고 곰국으로도 고아서 보약 삼아 먹으면 몸에 좀 좋을까 하는 행복한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노루고기를 먹는 꿈은 접어주셔야겠습니다. 이번 계획은 살상이 아니라 생포해서 일정한 장소에 격리하는 방법을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겁 많고 달리기 잘하는 노루를 과연 몇 마리나 온전히 생포해서 격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습니다.

한라산의 영물인 노루는 이제 하염없이 쫓기는 한심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총기류, 올무 등의 포획도구를 피해야 하고 미리 지정된 포획 지역을 알아내서 지혜롭게 줄행랑을 쳐야합니다. 노루 일생 새옹지마(塞翁之馬)임을 실감하면서요.

이번 결정을 보면서 아쉬운 점은 개체수 조정이 꼭 이렇게 한시적 포획 형식으로 진행돼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전에 적정한 개체수를 미리 예측하고 조절하는 시스템을 운용해서 지혜롭게 실행할 수는 없었는지, 관계 당국의 계획성 있는 매끄러운 일처리가 새삼 아쉽게 느껴집니다.

어쨌거나 이번 포획 계획이 성과를 거두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만약 이번 계획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노루는 포획의 대상이 아니고 살상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방아쇠에 검지를 건 엽사가 노루를 찾아 한라산을 누비는 광경을 말입니다. 노루의 숫자 이상으로 곳곳에 깔릴 죽음의 올무와 덫을 그려보세요. 이를 통해서 수천 마리의 노루가 죽임을 당하는 현장을 떠올려보세요. 아,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지혜를 모아 인간과 노루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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