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물질 vs 강태공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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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제주해녀문화보존회 대표
강태공은 중국 주(周)나라의 실존인물이다. 그는 80세가 될 때까지 한눈 팔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하며 낚시를 즐겼는데 그의 낚시 바늘은 보통의 낚시 바늘과 달리 곧게 펴진 낚시 바늘이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서백창(훗날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 됨)이 그의 그런 낚시 모습을 보고 연유를 묻자 ‘제가 낚으려 하는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세월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답변을 하였고 그의 범상치 않는 인물됨을 알아본 서백창은 그를 주나라 재상으로 등용하였다. 그는 무왕(武王)을 도와 천하를 평정했으며, 훗날 제(齊)나라의 시조가 됐다. 요즘의 낚시꾼들을 강태공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들이 물고기 잡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낚시를 핑계로 자연을 벗 삼아 휴식과 재충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해녀 물질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의 문의가 쇄도한다. 하지만 ‘한수풀해녀학교’ 외에는 특별히 일반인에게 개방된 어장이 없어 안내에 어려움이 있다.

내가 아는 한 대학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휴일이면 70여 ㎞ 넘는 거리를 차로 달려 물질을 하러 간다. 이들의 물질도 어찌 보면 강태공 물질이라고나 할까? 그들이 건지는 것은 고작 소라 몇 개와 운 좋으면 문어 한 마리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물질은 삶의 활력소라며, 소주 한잔만 걸치면 물질 예찬이 두어 시간이다.

이쯤 되니 ‘물질을 일반인에게 레포츠로 보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언뜻 들으면 참 생뚱맞은 소리 같다. 하지만 지금의 스포츠인 육상, 수영, 승마, 스키 등도 과거 부터 내려온 실생활의 기술이 스포츠화(化) 된 경우이다. 태권도, 검도, 유도 등도 전쟁과 경쟁적 삶의 현장에 그 기원이 있다. 시작은 사냥과 살상의 무기에서 출발한 사격과 양궁은 이제는 어떤 것을 사냥하거나 죽이는 데 의미를 두지 않고 얼마나 정확하게 맞추는가를 겨루는 경기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지금은 최초의 본원적 목적에서 동떨어진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낚시, 스쿠버다이빙도 사실은 실용적 목적에서 출발하였지만 지금은 레포츠가 된 경우이다.

물질도 낚시나 스쿠버다이빙처럼 바다에서 모두가 즐기는 레포츠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사격이나 양궁처럼 바다가 아닌 수영장에서 정교한 물질 기술로 기량을 겨루는 스포츠 경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물질은 태권도처럼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스포츠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으면 조금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기가 스포츠화 되기 이전에 이 같은 과정을 겪었다.

해녀물질은 스포츠와 레포츠의 소재일 뿐만 아니라 체험관광으로도 좋은 아이템이다. 선진국형 여행은 단순히 먹거리, 놀이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을 지향한다. 하지만 정작 제주의 해녀문화는 체험관광으로 좋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되게 상품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해녀물질을 직접 체험하는 관광 상품이 있다면 이보다 더 제주도를 인상 깊게 만드는 일이 있을까?

물론 시행과정에서 해녀의 터전인 바다를 침범하거나 함부로 남획하여 어족자원이 고갈되는 것을 막는 예방적 장치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해녀가 점차 고령화 되고 그 수가 줄고 있는 현실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긍정적 대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벌어들인 수익은 당연히 해녀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앞서의 제안이 보는 관점에 따라 고된 해녀의 삶을 단순한 스포츠나 관광거리로 전락시킨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해녀문화를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으로 접근한다면 그것 또한 기우일 것이다. 당장 올 봄에 개최되는 제주도민체육대회에서 물질을 번외경기종목으로 추가해 보면 어떨까? 봄날 춘몽 같은 상상을 해보며 이 꿈이 실현될 날을 살며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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