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느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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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前 중등교장 / 시인

“‘그느르다’가 무슨 뜻입니까?” 어떤 모임에서 물어봤다. 아는 이가 극히 적었다. 사전적 의미로는 ‘흠이나 잘못을 덮어 주고, 돌보고 보살펴주다’이다. 비슷한 어휘가 있다. ‘잘못을 탓하지 않고 너그러이 보다’는 ‘눌러보다’이고, ‘말이 잘못 되었음을 너그러이 듣다’는 ‘눌러듣다’이다.

 

“아버지, 4·3에 대해서 말씀 좀 해 줍서.” 대답을 않으셨다. 그의 형제뿐만 아니라 부모, 조카, 조카딸, 형수들까지 4·3이 앗아갔다. 그 수를 헤아림조차 불경(不敬)처럼 무섭다. 혈육의 일인데, 아들에게도 왜 대답을 않으셨을까? 돌아가실 때(1994년)까지 입을 다무셨다. 그것이 후손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시어 그러셨을까.

 

드디어, 대한민국 정부가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공식적으로 발족했다. 2000년 8월 28일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희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문을 대통령이 발표(2003. 10. 31.)했다. 이때까지 살아계셨다면, 선친(先親)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천붕(天崩)보다도 몇천갑절 더 큰 아픔을 어떻게 토로하셨을까.

 

프랑스 혁명(1789년)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런 최근의 일을 어떻게 지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러셀(B. Russel)의 대답이다. 220여년전의 일을 그는 ‘최근의 일’이라면서, 대답을 피하고 있다. 이에 맞추면, 4·3을 역사교과에 넣기까지는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프랑스혁명을 공화국시발(始發)로 볼 것이냐, 기요틴(斷頭臺)의 공개처형의 측면에서 볼 것이냐에 따라 아주 다르다. 역사적사건은 자칫 ‘장님의 코끼리말하기’가 되기 쉽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했는데도, 연속적사건들(Sequences)중에서 어느 한 부분만을 증폭확장(Amplification)하려는 게 아직도 일각에서 보인다.

 

‘어디에, 어느 곳에 인공기(人共旗) 꽂혔었다’만을 보려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이념(理念)이란 무릇 ‘더불어 잘살아보자는 철학’이다. ‘종내기(geno) 다죽이기(-cide)’ 즉, 종족집단학살(genocide)에 터한 이념은 어느 경우에도 내세울 수 없다.
‘최근의 프랑스혁명’처럼, 제주4·3에 대한 가르침 또한 더 긴 세월로 필터링 되어야 할 것이다. 4·3에 대하여, 학교교과의 방향까지를 조례(條例)로 정하려든다니, 참으로 성급하고, 무섭고, 위험스런 일이다.
4·3을 어느 측면에서 보아야할까. 돌아가신 이들의 영혼의 입장에서 보아 할 것이다. 제주문인협회에서 4·3 문학제(2013년)를 연다. 이 행사에 송고한 졸시(拙詩)로 마무리를 갈음한다.

 

# 그느르련다
살려 줍서/우리 할아버지,/농사구름 벗해온 삶뿐인데/행여 되돌려 줄까 애원 했더이다//살려줍서/우리 큰아버지,/대나무창짐승에 물려 가는 막길에/‘가족이랑, 내 가족만은’ 했더이다//살려줍서/우리 할머닌,/총부리에 공회당마당도 떨어 얼어/그 오라버니도 벙어리군중 됐더이다//우리랑 같이 살자/우리 큰어머니도 당숙모도,/학교문도 못 드는 애기들더러/‘같이 가자, 살러가자’ 안고 갔더이다//살려줍서/우리 숙부님들,/성안으로 유학 나온 중학생인데/오로지 글공부 밖 무슨 일 알았더이까//그들 다 보낸 세상 세월/4?3도 갑자(甲子) 돌아 등 휘어 굽어/핏자국에 돋아난 띠새 한 촉 곱게 뽑아/모사(茅沙) 흰 접시에 가닥 셋 내어 앉혀/향연(香煙) 피워 합장(合掌)으로 들었더니//물 건너(濟) 고을(州)아!/이제 나 죽어서 이르노니/네 손으로 했던 그 짓 눌러보겠고/네 입에서 터진 총소리 눌러듣겠노라/이제사 다시는.. 제주(濟州)야!/다 그느르련다/살리련다/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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