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람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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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수. 前 제주예총 회장 / 시인
아마도 유럽인이 조선사람 엿보기의 효시가 될 만한 글은 저 유명한 ‘하멜표류기’가 아닌가 싶다. ‘하멜표류기’는 네덜란드인 H.하멜이 썼다.

조선의 사정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으로서,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道難破記)’라고도 했는데, 1668년에 네덜란드어?영역본(英譯本)?불역본(佛譯本)?독역본(獨譯本)이 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1971년에야 영국 왕립협회한국지부에서 G.레드야드의 영역본을 발간한 바 있으며, ‘진단학보’ 1~3권에 이병도(李丙燾)가 영·불역본에서 번역·전재할 정도로 늑장을 부린, 조선 학계의 무관심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멋쩍은 생각도 들게 했다.하멜(Hamel, Hendrik, ?~1692)이 1653년(효종 4년), 상선 스페르웨르로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가는 도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漂着)하였다.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의 심문을 받고 이듬해 서울로 압송되어 훈련도감에 편입되었으며, 1657년 강진의 전라병영, 1663년(현종 4년)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어 잡역에 종사하다가 1666년(현종 7년), 7명의 동료와 함께 가까스로 탈출하여 일본을 거쳐 1668년 귀국하였다는 주 내용이다.

아무리 폐쇄적이고도 융통성이 없던 조선시대라 해도, 또 통역이 없어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역경에 처한 불우한 외국 난파선원들을 구출해주지는 못할지언정, 죄인으로 몰아 처형을 일삼았고, 끝내 자유를 갈망하는 이방인들의 귀국길을 막아 14년간 억류했다는 사실은 문화대국임을 자처했던 조선 사람이 할 짓이었는가? 그것도 일행 36명 중 7명만이 간신히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을 거쳐 고국 네덜란드로 귀국했다는 사실은 부끄럽디 부끄러운 조선 사람의 초상이 아닐 수 없다.

또 뿌끄러운 ‘조선사람 엿보기’ 책이 한 권 더 있다.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라는 책이다.

미국의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회주의 작가인 잭 런던이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잠시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본 내용을 기록한 종군기이다.

잭 런던의 눈에 비친 조선의 백성들은 겁 많고 무능력하고, 비능률적이었으며, 조선의 탐관오리들은 이 무기력하고 체념에 빠진 피지배계급에게 착취를 일삼는 자들이었다. 조선 조선인은 곧 제국주의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허약한 모습 그대로였다.

잭 런던은 나약한 조선인에 대한 특별한 동정심도 없었고, 조선 문화에 대한 이해심도 없었다. 차라리 그는 동양의 새로운 강자로 성장하고 있는 일본과, 수억의 인구와 드넓은 대륙 그리고 풍부한 자원을 가진 중국에 일종의 경외감과 두려움을 나타냈다. 그가 예측한 일본과 중국의 부상은 당시 서구이서 유행하던 아시아의 위험론인 ‘황화(황인종)위험’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한 세기 이상이 흘렀고, 현재 일본과 중국의 입지는 잭 런던의 예측이 타당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 당시 희망 없는 나라로 보았던 한국은 어떻게 변했는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환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잭 런던이 제국주의의 먹이가 될 조선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했다고는 볼 수 있는 것이, 그 후 우리는 36년간의 치욕적인 일제 강점기를 치렀고, 남북분단의 질곡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휴전선 이남의 대한민국의 융성 발전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우리는 20세기 초 미국 최고의 사회주의 작가, 잭 런던이 잘못 엿본 100년 후의 대한민국의 달라질 모습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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