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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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에는 ‘이차돈순교비’가 있다.

이차돈이 순교한지 290년이 지난 818년 헌덕왕 10년에 세운 6면 비석. 6면 중 1면에는 이차돈의 순교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땅이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잘린 목에서는 흰 피가 솟아 오르는 장면이 좁은 석면(石面)에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차돈 순교의 현장에 내린 꽃비는 절정의 한 순간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지난 주말만 해도 전국에서는 하루 종일 눈처럼 내리는 벚꽃을 보기위한 상춘객들로 붐볐다.

연분홍 벚꽃, 앵두꽃, 참꽃 등의 꽃비가 후두둑 거리는 빗방울 소리까지 겹쳐 봄의 운치를 더 했음은 물론이다.

▲제주에서도 벚꽃이 활짝 피어 여지없이 꽃비가 내리던 지난 13일 4·3사건을 주제로 한 HD장편영화 ‘꽃비’ 제작발표회가 있었다.

17일부터 촬영에 들어간 정종훈 감독(26)은 주연배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산갤러리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꽃비’는 매년 4월 제주를 관류하는 4·3의 아픔을 상징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제노사이드(대량학살) 차원에서 4·3의 역사적 희생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초점을 두겠다”고 덧붙였다.

제주 출신인 정 감독은 제주제일고에 재학 중 각종 영상공모전에 다수 입상과 대학 진학 후 4·3을 다룬 단편 ‘섬의 노을’을 촬영해 주목을 받았다.

영화 ‘꽃비’는 미국과 남한, 북한의 이데올로기를 각각 상징하는 남학생들과 4·3의 생채기를 고스란히 떠 안아 도민을 대변하는 여학생이 등장해 ‘이유 없는 희생’이 낳은 사건을 전개하는 1960년대 이야기다.

▲난데없는 광풍에 꽃비가 속절없이 쏟아졌던 시대. 4·3이라는 다소 버거운 주제를 스물 여섯의 젊은 감독이 담아낼 내용이 궁금하다.

그러나 꽃비를 즐기며 봄을 상춘하는 시기도 있지만 4·3처럼 우수수 죽임 당했던 시대의 꽃비도 있다. 이것이 꽃비가 갖는 역사적 상징성이다.

이차돈의 순교 현장에서도 꽃비가 내렸 듯 4·3의 현장에서도 무수한 꽃비들이 피고 졌다.

이것이 꽃비가 갖는 또다른 은유다.

꽃비가 갖는 진정한 은유를 정 감독이 어떻게 풀어낼지 벌써부터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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