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매양 낯설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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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前 제주도문인협회장
‘자살’, 참 흉측한 말이다.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 끔찍하다. 그런 독기로 생명줄을 단단히 당기면 좀 좋은가. 아무리 절박하다 해도 섣부른 선택이다. 당장 막막해도 찾으면 길은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다 자살은 아니다. 통속과 명분은 확연히 구분돼야 한다.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갔다 목숨을 끊은 이 준 열사나, 을사조약 체결을 보고 스스로 숨을 놓은 민영환 지사의 죽음은 ‘자결’이지 자살이 아니다. 특히 민영환 지사는 “아,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로 시작되는 유서를 남기고 회나무골 청지기 집에서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비장한 최후였다.

암만 곱씹어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 있다. 전직 대통령의 극단적인 선택. 시간이 지나도 가슴 섬뜩한 일이다. 무엇이 그분을 그 지경으로 몰았을까. 배경을 들추려 않는다. 이유야 어떻든 덮어놓고 그분의 마지막 장면은 비극적 종말이었다. 국민들의 뇌리 속에는 다만 그런 행위자로 각인될 수밖에 없다. 사사로운 얘기지만, 나는 현직 교원 시절, 그분에게서 표창을 받은 인연이 있어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한 나라의 정상에서 국민을 이끌었던 분이 그렇게 돌아가다니. 역사 앞에 그는 당당할 수 있는가. 그분의 죽음을 ‘자살’이다, ‘서거’다, 하고 따진들 무슨 소용인가.

왜 우리 사회에 자살 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유명 탤런트 일가족의 극적인 도미노는 우리를 몹시 아프게 했다. 고단한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거나, 성적을 비관했다거나, 폭력에 시달렸다거나, 사업 실패로 인한 좌절이거나 이유도 갖가지다. 또 얼마 전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중년 주부가 아들딸을 품고 고층에서 뛰어내린 것. 그들은 모두 죽었다. 굶주림일지언정 죽음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절대 될 수 없다. 그럴 용기가 있다면, 그런 결기로 상황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

자살 소식은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더 살아야 할 생명들이 한순간의 결단에 목숨을 내맡기는 무모한 일이 자행되고 있으니 선진사회는 멀었다.

최고의 문자 한글에 문맹률 1% 이하의 세계 유일의 나라, 메모리 반도체 일등의 나라,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음악 수준을 자랑하는 나라, IT산업과 핸드폰 보급률 1위의 나라.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럼에도 자살률 1위에 저 출산 1위의 불명예를 함께 걸머지고 있는 이율배반의 아이러니한 나라. 참 헷갈리는 나라다.

석가모니 세존은 강림하는 순간, 두 손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외쳤다. 하늘 위와 땅 아래를 통틀어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 했다. 부처에서 성문 연각 보살과 모든 중생이 다 평등하고 귀하다 한 선언이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는 여름밤 램프에 몰려든 수많은 벌레들이 날개가 타서 책상 위로 떨어져 죽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창문을 닫았다고 한다. 차라리 무더운 공기를 호흡하며 견딜 일이지, 죽어가는 벌레들을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었다는 것. 그렇다. 인류의 봉사자로서 아프리카 그 오지에 버려진 생명들을 위해 평생 희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생명의 존귀함 때문이었다.

자살은 천형(天刑)의 죄악이다. 아무리 생활이 고통이라 해도 삶은 소중한 것이고, 삶을 영위하는 한 생명에 더할 존귀한 가치가 어디 있는가.

제발 이 나라, 이 사회에 ‘자살’이라는 끔찍한 말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수십 만 어휘의 곳간인 우리말사전에서 추방해야 할 말이 자살이다. 그건 순전히 우리의 결기에 달린 것. 필요하지 않은 말은 언중(言衆)의 뇌리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일이 없으면, 그런 일을 가리키는 말도 사멸한다. 말이 죽을지언정 멀쩡한 사람이 스스로 죽어서야 될 일인가.

생명은 외경해야 한다. 늘 대하는데도 매양 낯설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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