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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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백록초등학교 교장
해마다 4월이 되면 제주는 몸살을 앓는다. T.S.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를 남겼는데, 제주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제주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4·3사건이 일어난 달이기에 그렇다.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추념식을 열고, 대통령이 참석한다 하더라도 4·3은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건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노무현 정부 때, ‘제주 4·3 특별법’에 의해 4·3이 제자리를 잡고 대통령이 사과한 일이며, 4·3을 이해할 수 있는 기념공원이 생기고 평화박물관이 들어서서 망자의 한을 위로할 수 있게 된 일이다.

지난 4월 1일 애국조회에서 나는 4·3사건에 대한 훈화를 하였다. 짧은 시간에 4·3을 이해시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어서 사건의 전말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추모의 마음을 갖자는 설명을 끝으로 말을 마쳤다.

그런데 4·3을 어린이들에게 교육시키는 일은 난감한 일이다. 4·3교육이 부실하다는 방송이나 신문기사를 읽을 때면 더욱 그러하다.

4·3교육은 6·25전쟁이나 광주민주화 운동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하지 않아 설명하기가 어렵다.

1학년을 비롯한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4·3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4·3이 일어나게 된 동기를 설명하지 않고 피해사실만 나열할 것인가. 3·1절 기념식 발포사건을 설명할 때면 미군정이 3·1절 기념식을 열지 못하게 한 이유는 무엇인지, 3·1절 기념식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자세히 이야기 하려면 당시 미국과 소련의 좌 우 대립 등 세계정세와 제주의 분위기를 설명해야 하지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낮에는 경찰과 군인, 서북청년단을 피해 숨고 밤에는 산사람(무장대)들을 피해 숨었다고 설명하면서 군인과 경찰, 서청과 무장대가 모두 가해자이고 불쌍한 도민들이 동굴이나 바닷가로 피난을 갔고, 산사람으로 몰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군·경에게 죽었다는 것만 나열하기가 마뜩치가 않다. 피해자의 수가 다르긴 하지만 군·경과 무장대가 동시에 제주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무장대가 지서나 서청 사무실을 습격한 사건은 그렇다치더라도 학교를 불태우고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인 걸 어떻게 합리화 시킬 것인가. 경찰과 군인, 서청 등 공권력이 가해자라고 강조하면 무장대는 왜 주민들을 학살했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남로당과는 관계없이 민족주의자들이 미군정과 단선정부 수립에 대한 반감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만 설명할 것인가. 그렇다면 남로당 제주도당책과 유격대 총사령관이었던 김달삼이 4·3을 주도하다가 목포를 거쳐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 회의에 참석하여 제주유격대 투쟁상황을 보고 조선인민최고회의 대의원으로 국기 훈장 2급을 서훈 받았고, 6·25전쟁에 참여했다가 국군토벌대에 밀려 퇴각하던 중 사살되어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가묘로 안치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4·3을 정치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교육해선 안 된다. 역사를 왜곡하여 입맛대로 가르친다면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 될 뿐이다. 4·3을 바르게 정립하고 가르칠 교재가 정말 필요하다. 좌우익의 대립이 아니라 항쟁이라고 보는 시각이 4·3의 주도권을 잡고 있어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만 정말 맞는 교육인지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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