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사’인가, ‘저항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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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소설가 / 시인
현길언(玄吉彦) 교수가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시사계간지 ‘본질과 현상’에 반론문을 실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 입장과는 배치되는 일종의 ‘소수 의견’으로, 노무현 정부는 2003년 10월 ‘제주4·3특별법’에 따라 이뤄진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대통령이 공식사과까지 한 사안이다.

잘 아시다시피, 현길언은 ‘성 무너지는 소리’, ‘급장 선거’가 추천되어 등단한 작가이다. 제주도라는 향토적 삶의 세계를 소재로 분단된 민족 비극의 실상을 파헤치는 작가로 평가해왔다. 장편소설 ‘한라산’을 비롯, 제주4·3을 형상화하는 데 앞장서 왔다.

특히 현길언은 이 반론문에서 “4·3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맞서 싸운 저항사(抵抗史)가 아니라, 제주도민의 수난사(受難史)이다. 노무현 정부의 ‘4·3사건’ 조사는 4·3사건을 건국 초기 단선(單選)정부 수립이라는 부끄러운 역사에 저항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4·3사건의 진상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하여, 파문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길언이 제주4·3을 수난사로 보는 시각은 대체 무엇인가? 제주4·3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역사인식이다. 바로 ‘희생당했다’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살해당한 것은 사실이다. 까닭도 없이 목숨을 빼앗겼다. 살해당한 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생각한다면 도민 전체가 희생당했다고 보아야 옳다.

그렇지만 현길언이 주장하는 제주4·3의 수난사적 역사인식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제주4·3을 체험하면서 제주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누구에 의해서 살해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사실을 묻어두고 접어두려는, 공포에 사로잡힌 방관자적 패배주의자의 역사인식이 아닐까?.

따라서 현길언의 수난사적 역사인식은 피의 역사를 씻어내려는 회복운동, 즉 억울한 한(恨)을 풀어주는 해원(解寃)이 결여되어 있다. 수난사적 역사인식은 수난을 의도적으로 야기시킨 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정치집단의 만행을 규명하고, 규탄하는 데까지 이끌어가지 못하고 현상적 치유에 머물러 버리기 쉽다. 물론 수난과 아픔과 희생,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한을 푸는 구체적 방법론의 모색은 더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시인 김명식의 논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제주4·3에는 학살과 희생뿐만 아니라 항쟁의 역사가 분명히 존재한다. 단독선거를 저지하고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제주도민의 꿈이 해방공간과 제주4·3에 녹아있다. 제주도민은 통일국가 수립을 원했고, 그래서 단선반대투쟁에 동의할 수 있었다.

또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에 대한 ‘경우회(警友會)의 반론’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제주4·3을 일으킨 남로당의 책임은 제대로 묻지 않고, 진압 과정에서의 민간인 학살만 부각했다는 것이 그의 항변이다. 당시 좌익에 의해 군경과 우익 가족들도 처참하게 학살됐는데, 그런 부분은 간략하게 다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바로잡기’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편향이 빚어낸 것으로 바로 잡았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의 무관심 때문에 방기됐다고도 덧붙였다.

제주4·3을 ‘4·3 항쟁’으로 인식하는 저항사에도 거부반응을 보였다. 4·3항쟁은 ‘희생자’보다는 ‘투사’로 보이는 게 더 정당성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는 주장이다. 저항이 아니라 수난사로 봐야 화해나 상생이 가능하고, 4·3사건을 저항사로 보면, 저항의 대상인 대한민국 정부가 이 사건을 기념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게 되는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지슬’에 대해서도 “군인들은 피에 굶주린 악으로 그렸고, ‘착한 군인’도 도구로 끼워넣는 등 도식적이다. 4·3사건 배후에 미 군정과 군사고문단이 있다는 식의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제주도민들의 희생을 왜곡할 뿐이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제 제주4·3이 수난인가, 저항인가를 가르는 토론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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