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옮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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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준. 前 제주문인협회장 / 희곡작가
피곤에 겨운 먼 여행길에서나, 추위와 두려움, 온갖 슬픔과 괴로움에서도 포근하게 품어줄 집이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시련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바쁜 세사에 쫓기거나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잔인하게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도 가족이 있는 집에서는 위로를 받고 휴식을 얻고 인간스러워진다.

생각해 보면 모든 꿈의 시발점도, 방랑의 종착지도 집이다.

성취의 기쁨과 쓰라린 실패의 아픔을 나누고 삭이던 곳, 저녁이면 돌아오는 둥지, 한 가족 임을 확인하는 곳. 먼 곳에 있는 지인들의 소식을 받아주던 곳이 집이다.

경제 파탄으로 직장을 잃고 밤거리를 헤매며 노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안존할 집이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쥐꼬리만한 봉급에 가난한 예술가의 아내로 살면서 그렇게 네 번을 옮긴 후 마련한 집에서 양가 부모님과 마지막 이별을 했고, 자식을 장가보냈고, 문학 작품을 쓰면서 인생 황금기를 보냈다.

그런데 아내가 느닷없이 이사를 하자고 한다. 단 둘이 살기엔 적당한 공간인데, 앞으로 손자들이 생기고 식구가 늘어나면 고향이라고 찾는 집이 좁아서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다. 경제권을 쥐고 있는 사람의 결정이니 호불호를 말할 권리도 없다. 그저 장기 출타 중에 이사 가 버리지 않고 데려가 주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 나이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발품을 팔며 마음에 드는 집을 선택한 아내가 불쑥 이삿날까지 정해 통보해 왔다. 그런데 정작 어려운 것은 정든 공간, 사물과의 이별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영감을 교시해 주었고 무한한 창작의 열정과 무언의 사념들을 키웠던 서재와의 헤어짐은 차라리 아픔이었다.

책들을 정리하다 툭하고 떨어진 윤동주의 서시 일부분이 적힌 단풍잎 책갈피. 어느 해 늦가을 교정의 벤치에서 입시 준비를 하던 여학생이 수줍게 내밀던 코팅된 네잎 클로버. 문학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암송하느라 밑줄을 그어가며 읽던 청춘의 책들이 세월의 때가 묻어 거멓게 변질되었다. 그렇게 버릴 책들을 바라보노라니 속세의 때가 묻은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 해 온다. 책마다 쌓인 이야기들이 추억으로 되살아났지만 반으로 줄이라는 엄명에 모질게 마음먹고 젊은 시절의 양식들과 이별해야했다.

이사를 해야 정리가 된다고 했던가. 필요 없는 옷가지며 물건을 다 끄집어내니 산더미다. 한 때는 절실하게 필요했고, 소중했던 것들이 이제는 소용이 없다고 버리자니 가슴 속이 시리다. 그렇게 15년간 살던 정든 집을 내주고 이사를 했다.

최근까지도 제주에는 신구간이라 해서 정해진 이사기간이 있었는데 요즘은 많이 퇴색되었다. 육지에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분주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신구간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집은 우주(宇宙)다. 우주라는 한자의 뜻이 그렇다. 서양 속담에도 집에서는 누구나 왕이다 라고 했다. 그만큼 편안하고 아늑하고 사랑과 꿈을 키우며 가풍을 익히고, 철학과 인생관을 설계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사를 한다는 것은 환경뿐만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고 그 집단의 문화에 익숙해 져야한다.

불가에서는 불교에 입문하는 것을 출가라 했다. 속세를 떠나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라는 뜻이다.

여행지에서 잠을 설치는 것도 낮선 잠자리 때문인데 새로운 보금자리가 아직은 불편하다.

보궐 선거가 한창이다. 이사 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철마다 정당과 지역구를 이리저리 옮기는 정치인들은 어떤 심장을 가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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