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일,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양길주. 수필가
몇 년 전 공직에서 은퇴했을 때는 자유인이 된 것 같은 황홀함을 맛볼 수 있었다. 취미활동에도 빠져보고, 여행도 해 보고, 도서관도 들락거리며 나름대로 자유의 의미와 생의 가치를 향유하며 사는 삶이라고 애써 자위도 해 보며. 그러나 그것도 한 때일 뿐, 땀과 정력을 쏟을 수 있는 일거리에 대한 갈망이 생겨났다. 젊은 시절 미미한 역할이었지만 그 때의 흘린 땀과 열정이 진정한 일의 보람이며 삶의 강한 동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한 가지 방법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죽은 사람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그가 살았을 때 어떤 일을 했는가로 이루어진다. 일을 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의미가 있음이다.

일은 생존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자아가 품고 있는 높은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일을 통해서 자신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공공적 가치를 갖는 일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어떤 이는 ‘노동이 없으면 모든 생명은 부패한다’고까지 했다.

옆집에 팔순을 향한 나이임에도 손수레를 끌며 폐휴지를 모아 용돈을 마련하시는 할머니가 있다. 한때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모아 둔 신문지며 잡지 나부랭이들을 건네며 위로의 말도 곁들였지만 그 일을 하는 게 생계수단의 의미를 넘는 보다 숭고한 삶의 긍지가 내포돼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을 통해서 의미의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기쁨도 맛보고, 노동의 순수함에 집중함으로써 걱정 근심 같은 헛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은 그 자체가 삶이 되고 인격이 되고, 늙음을 회피하는 처방이 되고 있음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일이 있다.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는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다. 어떤 이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다가 이를 팽개치고 싸구려 밥집을 내기도 하고, 보수가 좋은 대기업에 다니던 사람도 어느 날 농촌으로 들어가 농부가 되기도 하는 걸 볼 수 있다. 일은 돈과 명예만이 그 보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다. 일 자체에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남들이 뭐라 하든 그 일에 신명을 찾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함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젊은 시절에는 귀천을 따지지 말고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 보람과 긍지가 있는 일이라면 무보수면 어떤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면 그런 일을 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그런 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천직을 찾는 일이야 말로 인생설계의 핵심이 아니겠는가. 보수가 많은 일을 찾아 너도나도 내닫는 사회는 건강해 질 수 없다. 경쟁과 속박이 지배하는 그런 사회가 되고 말 터이니. 우리 사회 현실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보다 더 큰 문제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놀고 먹으려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음이다. 복지병이라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나쁜 현상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결국 협동적 조화가 필요한 사회에 불협화를 만들어 내고 사회의 공정성을 해치며 자신 또한 타락과 부패의 늪에 빠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조직화 세력화 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국가나 사회는 몇몇 지도자나 관련 조직의 힘만으로 경영되고 유지발전 되는 건 아니기에 이런 불안이 생기는 건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니….

일,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한 교육에 국민적 관심과 범정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학교 교육에서 진로 지도의 방향과 실재에 대한 반성과 재검토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