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칼럼>잊혀지는 전쟁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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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외국의 문화재 분야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는 아마 근·현대 문화재일 것이다. 외국의 신문,잡지는 ‘현대유적발굴’이란 기사를 자주 내고 있다. 거기에 거론되는 것들을 보면, 공장, 굴뚝, 등대, 탑, 기차역, 경마장, 발전소, 정수장, 다리, 교도소, 뒷골목, 적선지대 그리고 군사유적 등이다. 그 중 군사유적을 세분해 보면 특공기지, 군부대 터, 군공장 터, 비행장 터, 격납고, 요새, 참호, 토치카, 초소, 창고 등이 있다.

서구는 역시 이 분야도 선구적이다. 어떤 면에서 서구사가 산업혁명사 그리고 전쟁사이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근대사 중 전쟁 도발국의 수괴 히틀러, 무솔리니,그리고 쇼와 천황 등의 전쟁 유적은 미화되기까지 한다.

일본의 경우도 최근 이에 대한 미화가 극대화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태평양전쟁 시기사가 제일 흥밋거리다. 태평양 바다를 뒤져 군함, 비행기를 찾는 일도 그중 하나이다. 사이판, 괌 등지의 전쟁터 찾기는 이제 고전이 되어 버렸고, 최근에는 도심의 유적지 찾기가 성황이다. 그것은 일종의 살아있는 전쟁역사 찾기가 되는 것이다.

전쟁 문화재 중 하나로 격납고와 엄체호(掩體壕)라는 것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격납고는 비행기, 비행선, 자동차 같은 것을 넣어 두는데 쓰는 창고를 말하고 엄체호는 사격에 용이하게 하고, 적탄에 대해 사수(射手) 등을 엄호하는 설비를 말한다. 엄호(掩壕)라고 하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엄호용으로 판 호를 엄호라고 한다. 따라서 엄호는 엄체호의 준말이 되는 셈이다. 대개 지하에 있는 것이 지하호(地下壕)이고 지상에 있는 것이 엄체호라 보면 된다.

그러면 필자는 지금 왜 별안간 격납고와 엄체호를 말하는가? 일제는 2차대전 말에 우리나라 여러 곳에 엄체호를 만들었다. 주로 군용비행기를 둔 비행장과 그 부근에 만들었다. 비행장이라 해 봐야 임시 활주로 정도가 있는 곳이었다. 연합군의 B29기 공습에 대비해 군용기를 숨겨두기 위해 만든 것이 엄체호였다. 일본인들은 이를 ‘엔타이고’라고 불렀다.

엄체호는 시간벌기용으로 급조된 것이라 상태가 조악스럽다. 콘크리트, 철근이 귀할 때여서 철근도 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엄체호는 평평한 지면 위에 세워지는 것으로 대부분 만두형이었다. 정면 개구부의 너비 17m, 길이 15m, 높이 4m,두께 60㎝가 그 규격이었다. 개구부는 반원형으로 입구 쪽은 넓고 뒤쪽은 좁아지는 깔때기 형이다. 일본과 조선 등 전쟁터에 세워진 것이 모두 비슷했다.

이를 만드는 방법은 먼저 흙을 둥글게 쌓아 겉틀을 만든 다음, 그 위에 가마니를 덮고 원형철근 몇 가닥을 넣고 콘크리트를 쳐 활지붕(볼트)형태의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콘크리트가 굳은 후 흙을 긁어내 내부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군용기를 숨기는 것이다. 공사는 대개 인근에서 동원된 조선인이 했다.

엄체호는 전쟁 때 실제로 쓰이진 않았다.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8·15 광복을 맞았기 때문이다. 전후 엄체호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만들어질 때부터 극비 사항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냥 콘크리트 더미일 뿐이었다.

다행히 문화재청은 최근 격납고와 엄체호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동안 경남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구 비행장 격납고 2기(등록문화재 206호)와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1기(39호)를 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올 초에는 경북지역에서 이에 대한 사전 조사가 시행됐다. 영천지역 옛 영천비행장 부근 금호읍 일대에서 엄체호 20∼30여 기가 발견됐다. 최근 조사에서는 신월리에 3기, 봉죽리 2기, 해현지 안에 반파된 것 2기 등 7기가 확인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3월 22일,금호읍 소재 엄체호 7기를 모두 근대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그중 1기가 예고 이틀 만인 24일 소유주에 의해 굴삭기 등으로 파손돼 버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외국은 전쟁문화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우리의 것은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한 채 그나마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전쟁의 흔적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김정동 문화재위원·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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