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을(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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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내 굴지 기업의 한 간부가 해외 출장 중에 스튜어디스에게 폭언·폭행 한 이른바 ‘라면상무’사건을 시작으로 ‘빵회장’ ‘대리점 밀어내기’를 거쳐 청와대 전 대변인인 ‘윤창중 성희롱 사건’을 정점으로 ‘갑을관계’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갑을관계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원래 갑을 관계는 계약서에 명칭이 반복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시작된 편리한 인식방법(이하 갑 이라하고)으로 시작되었지만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힘과 권력을 가진 자이고 을은 약자와 억압받는 자를 대표하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이런 와중에 제주지역에서도 ‘갑의 횡포’를 보여주는 사례가 발표됐다. 지난 28일 서울 참여연대에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임차인들의 피해사례 발표 대회가 열렸는데 연동 바오젠 거리의 사례가 포함돼 착잡함을 자아냈다.

이날 발표된 사례에 따르면 바오젠 거리 건물에 8개의 영세 상인들이 임차해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화장품 매장을 열 목적으로 건물을 매입한 건물주는 입주상인들을 계약만료로 내몰았다. 권리금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보증금만을 주며 내몰린 경우다. 이는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으로는 보호받을 수 없는 사례다.

바오젠 거리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더욱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문제는 바오젠 거리와 주변 상가건물의 임대료가 폭증하고 있다는데 있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1층의 경우는 1년사이 임대료가 100% 인상됐고, 2층 상가의 경우도 50%를 인상하는 ‘살인적’인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지난 29일 이에 대한 논평을 통해 “대규모의 중국인 자본이 기존 상인들을 내몰기 위해 과다한 임대료로 입주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직접 상가건물을 매입하면서 계약이 끝난 영세 상인들을 권리금도 인정하지 않은 채 거리로 내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바오젠 거리는 제주도의 중국인 관광객 유치라는 측면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이름만 붙인 것이 아니라 바오젠 그룹 인센티브 투어 유치를 위해 도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점점 더 많이 찾으면서 표면적으로는 거리조성사업의 성과를 얻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성실하게 영업을 하고 세금을 납부해 온 영세상인들이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이곳의 영세상인들이 영업을 해 얻은 수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한 결과가 도리어 자신들을 내쫓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라며 “제주도정은 상인들에 대한 보호조치 없이 관광객 유치만에만 골몰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제주도정이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민생을 무시하는 것이고, 오로지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에 목매어 도민의 삶을 방관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며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국민, 대기업-중소기업, 정부기관-민간기관, 집주인-세입자, 자본가-노동자 등등 모든 관계와 계약은 엄밀히 따져 보면 힘의 불균형과 돈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수평적 거래관계인 갑을관계가 수직적 종속관계로 바뀐 것이다.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갑을의 필연성이 존재하기에 갑을적인 계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나도 을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때 우리사회는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갑을사회를 벗어나 공유사회로 진입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사고뿐만 아니라 행동양식을 바꾸어야 한다. 제주도도 바오젠 거리의 상황을 단순히 경쟁시장의 사례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제주참여환경연대의 지적처럼 ‘공존’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부남철 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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