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산과 바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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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는 계절에 따라 다르다. 봄에는 숲길을 따라 사람행렬이더니 햇살 뜨거워지는 요즘엔 해안길 따라 차량행렬이다.

봄은 아기자기한 풀과 나무들의 생기가 사람들을 부르고, 여름바다는 그냥 풍덩 빠져들고 싶은 청량감이 우리를 유혹한다. 바다가 해방, 자유, 스릴 등 삶의 피로를 털어낼 수 있는 낭만이라면 산은 여유와 포용과 섬세한 그 무엇들과의 만남이요 교감이다. 그러니 산과 바다는 인간의 영원한 향수요 로망이 아닌가.

파랗게 물오른 숲이 나를 부른다. 가물가물 아지랑이 피워 올리는 들녘도 내 호기심을 잔뜩 부풀어 오르게 하고. 숲길 어느 모롱이에는 화사한 풀꽃들이 내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해안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초 뜯는 아낙들의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 빨강, 파랑, 노랑… 갖가지 의상에 각양각색의 머플러를 휘날리며 바위 위를 수놓는 손놀림, 밀레의 만종이 이 운치와 견줄까. 자갈 틈새로 부서지는 잔물결, 청백의 포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내며 바다의 아리아를 연주한다. 여기에 낚싯대를 꽂아놓고 온갖 시름을 바다에 담금질하는 강태공이 자리해 있으니 그야말로 명화의 구도가 아닌가. 이게 낙원이리라.

일과 놀이가 구별되지 않는 삶, 자연과 하나 되어 순응의 몸짓으로 생을 채색해 가는 모습, 자연과 삶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냄이다.

내 고장 제주. 산이 있으니 산촌에다 삶을 조각하고, 바다가 있어 어촌의 비경에다 둥지를 튼다. 이곳은 축복의 섬이요, 은혜의 땅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땅의 자연환경도 경제에 치이고, 개발에 뒤집히면서 숲이 알몸을 드러내고, 초원도 시커먼 그 속살을 처연하게 내보인다. 해변에도 둑을 쌓아 파도의 진행을 억지로 가로막고.

이제 제주 본래의 모습은 산과 바다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제주의 토속적 숨결이 배어있는 숲과 해변의 절경을 찾아내어 어김없이 들어서는 건축물이나 관광시설들. 오늘도 제주 고유의 풍치를 걷어내고 덧씌우는 기계음이 요란하다.

자연 훼손의 대가로 얻은 부나 문명의 위세가 자연을 되살릴 수는 없는 일. 개발과 보호라는 구실이나 경제를 앞세운 명분도 자연 훼손을 정당화할 수는 없음이다.

우리 고장 제주가 청정 자연 말고 자랑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제주의 얼? 토속문화? 이것들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자연에서 잉태하여 그 속에서 자라며 명맥을 유지해 온 것들이다. 우리의 산과 바다를 훼손하는 일은 우리의 얼이나 토속문화의 근간을 지워버리는 일, 제주다움의 정체성을 허무는 행위다.

산과 바다와 인간의 삶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알맞은 구도다. 서로 상보관계가 되기도 하고. 바다가 억겁의 세월동안 깎고, 쌓으며 다듬어 놓은 그들의 공간을 숲의 오랜 공력으로 적합하게 다져놓은 저들의 터전을 인간이 함부로 침범하여 맘대로 제어하겠다니 파도가 포효하고 숲이 신음하는 것이다. 숲의 신음은 곧 인간의 고통으로, 바다의 포효는 인간의 통곡으로 전이될 것이니.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본성이 유지되도록 다스려 나가야 인간에게 마르지 않는 영원한 행복의 샘으로 거기 그렇게 존재하리라.

제주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지 않은가. 제주의 산과 바다를 ‘절대보존자원’으로 지켜나가는 일이야말로 제주의 정체성을 드높이는, 제주인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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