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위원회, ‘살아있는 박물관’을 답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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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 꽃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작곡가 박태준(1901∼1986)의 학창시절 추억을 담은 가곡 ‘동무생각’의 노래비는 대구 근대골목길의 중심지인 동산동 청라언덕에서 옛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푸른 담쟁이덩굴이라는 뜻을 지닌 청라(靑蘿)는 언덕 위의 선교사 주택과 이웃한 신명고교에 담쟁이덩굴로 무성하게 뒤덮여 온통 푸르러진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실시한 제주특별자치도 건축위원회의 영남권 건축답사에서 마지막 방문지가 바로 ‘대구 근대골목’이었다. 이번 답사는 우수한 사례를 거울삼아 제주에 적합한 도시경관을 유도할 취지에서 마련되었는데 특히, 대구에서는 제주의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방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근대골목’이란 이름이 붙여진 대구 도심은 최근 몇 년간 놀랄 만한 변화를 겪었다. 좁은 골목마다 문화해설사가 이끄는 단체 관광객이 쉴 새 없이 오가고, 그 곳이 근대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곳인지 알려주는 표지판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마치 파리나 피렌체의 옛 골목을 걷는 듯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분위기이다.

이는 대구 구도심 구석구석을 답사하며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대구의 역사를 이루는 작은 흔적들을 발견해내려는 민간의 노력이 이룬 성과였다. 서양 근대건축물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들의 인생이 담긴 고택,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약방 길과 구도심의 흔적 등이 지금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골목길을 따라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공공의 지원이 더해지며 본격적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 옛 대구읍성의 역사적 흔적을 발굴해 복원하는 한편, 역사경관을 가리고 조화를 깨트리는 시설물을 철거하고 길도 정비했다. 장소에 녹아있는 이야기와 문화를 찾아내어 공간을 재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은 ‘근대골목투어’라는 프로그램으로 수렴돼 관광자원화되었다. 이러한 대구시의 지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존돼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철거되어버린 옛 제주시청사의 부지를 이제야 뒤늦게 매입해 관광버스 주차장으로 조성하겠다는 제주시의 역사인식과는 사뭇 비교된다.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카(E. H. Carr, 1892~1982)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대구 근대골목에서 사람들은 과거와 대화할 수 있다. 길게는 100여 년 전, 짧게는 수십여 년 전에 이곳을 수놓았던 독립운동가 서상돈, 시인 이상화, 작곡가 박태준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따라서 근대골목을 찾은 이들은 앞선 세대의 희로애락을 알게 되고, 소통하고 공감하게 된다. 계산성당과 같은 건축물, 끊어질 듯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길, 그리고 온갖 풍상을 간직한 나무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런 대화를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되기도 했다.

요즘 제주에서도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원도심 복원운동이 일고 있다. 제주 원도심 복원 작업의 근간은 남문로, 중앙로, 칠성로라는 세 개의 길을 엮어 칠성통에서 산지천까지 11곳의 제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제는 어떤 건물이나 장소로서의 유적뿐만 아니라, 도시의 핏줄인 길과 골목에도 주목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을 그 장소성과 역사성에 맞춰 다시 다듬어내야 한다. 그 길을 찾아 숨어있던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거기서 다시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것,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속삭이는 길과 골목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제주의 가치를 복원하는 진정한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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