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부끄러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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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 소설가
지난주에 우리는 참 민망한 ‘손가락질’을 도리 없이 견뎌야했습니다. 홍콩의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에서 보고서 형태로 건너온 그 손가락질은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적나라하게 일깨워줍니다.

PERC는 아시아 각국에 상주 연구원을 두고 각 나라 정치·경제 이슈 분석 및 국가·기업 리스크 관리를 자문하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매년 각국에서 활동 중인 외국 기업인 1000명~2000명을 대상으로 현지의 부패 정도를 평가해서 그 결과를 내놓습니다. 이들의 조사는 현장에서 뛰는 경험자를 대상으로 얻은 통계여서 상당히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알려져 있습니다.

PERC가 이번에 발표한 우리나라의 부패에 대한 평가는 실망과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한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아시아 17개국(미국, 마카오, 홍콩 포함)의 부패 정도를 점수로 환산해 순위를 매긴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 선진국(developed countries) 중 최악’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렇게 가차 없는 손가락질, 참 오랜만에 봅니다.

2013년 한국의 부패 점수는 6.98점(10점에 가까울수록 부패 심각). 2004년 6.67점까지 올라갔다가 점차 떨어져 2010년 4.88점까지 낮아졌는데, 이후 다시 상승해서 이번 조사에서는 최고점을 경신했습니다. 부패 점수를 가장 높게 받은 인도(8.95점)와 불과 2점 남짓 차이가 날 뿐이니 망신살도 이런 망신살이 없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도 청렴국 1위에 오른 나라는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는 국제투명성기구(TI)의 평가에서도 매년 청렴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으니 등위 자체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만 점수를 보면 절로 감탄이 터집니다. 0.74점.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정말 꿈의 점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싱가포르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한 일본, 호주가 2.35점임을 감안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점수입니다.

"한국 부패의 뿌리는 정치·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층부까지 뻗어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부패 현상은 한 발 더 나아가 '국경을 넘어선 부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는 홍콩발 이 손가락질은 단순한 비웃음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국격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PERC에서 지적했듯이 부패한 사회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고 이는 결국 경영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감수하고 투자할 외국자본이 많지 않으리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청렴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통스러운 결단이 있어야합니다. 필요하다면 싱가포르가 실시한 반부패 정책에서 절실하게 배워야합니다. 싱가포르의 부정부패 처벌은 정말 강력합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뇌물을 받거나 제공한 경우 우리 돈 약 9000만원 이상의 벌금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받아야 하고, 뇌물을 받은 자는 별도로 받은 금액 전부를 국가에 반환하되 반환할 수 없을 경우에는 액수에 따라 징역을 추가 부과합니다. 그러니 일단 걸리면 속된 말로 그냥 거지가 되어 교도소에서 썩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도 세계 5위, 아시아 1위를 기록한 싱가포르는 국가 주도의 강력한 부패관리 체제를 가동해서 부정과 부패를 법과 제도로 척결했습니다. 반부패 총괄기구로 '부패행위조사국(CPIB)'을 설치했고 이 기구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부패방지법 제정과 함께 강력한 수사권 및 사법권을 CPIB에 부여했습니다. 철저하게 외부 간섭을 배제하여 공직자 부정행위뿐만 아니라 민간 부정행위까지 조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싱가포르처럼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더 엄격하고 철저한 법 집행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강자인 부자와 고위층에게는 느슨하고 너그러운 법집행 따로, 돈 없고 힘없는 서민에게는 원칙대로 강력하게 적용하는 법집행이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존재하는 한 부패국가라는 부끄러운 멍에는 절대로 벗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PERC 설립자 로버트 C 브로드풋의 지적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한국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서 형기를 다 채우고 만기 출감한 재벌 회장 이름을 한 명이라도 댈 수 있습니까?”

강력한 처벌이 수반된 예외 없는 엄정한 법집행, 이것이야말로 부정과 부패를 뿌리 뽑고 청렴국가 대열에 들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지름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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