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 영감님과 이비인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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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호 이비인후과 전문의

어린 시절 동화책이나 만화를 통해서 누구나 한 번쯤 만나봤을 혹부리 영감님 설화를 기억하시는지요? 목에 큰 혹이 있는 영감님이 도깨비를 속여 혹도 없애고,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일 혹부리 영감님께서 혹을 떼기 위하여 병원을 찾으신다면 어떤 검사들을 할까요? 그리고 혹부리 영감님의 병명은 무엇일까요?

 

얼굴이나 목에 생긴 종양에 대하여 다루는 학문을 두경부외과학이라고 하며 이비인후과 의사가 전공하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이비인후과를 이비인후-두경부외과라고 하기도 합니다. 신체 다른 부위에 비하여 얼굴이나 목에 생기는 종양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진단 및 검사 방법 또한 매우 다양합니다. 우선 병원에 환자분이 오시면 의사는 환자분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봅니다. 이를 시진(視診)이라고 합니다. 시진을 통해 종양이 있는 부위를 확인하고 염증성인지 비염증성인지 확인합니다. 염증성인 경우 대개의 환자분들은 진료실을 들어오시며 눈살을 찌푸리시는데, 병변 부위는 벌겋게 발적을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후에 의사는 환자와 대화를 하면서(구진,口診) 병의 경과를 파악하고 병변을 만져봅니다(촉진,觸診). 이 과정에서 종양 진단은 이미 절반이상 끝나게 됩니다. 특히 종양이 소위 얘기하는 암, 즉 악성 종양인지 아니면 양성 종양인지는 거의 이 과정에서 파악이 이뤄집니다. 물론 신이 아닌 이상 100%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절반이상의 확신은 가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혹부리 영감의 얘기로 돌아와서 과연 혹부리 영감님의 종양은 무엇이었을까요? 대개의 동화책들에서 묘사되는 영감님의 혹의 모양과 위치로 봐서는 이하선이나 악하선에 생긴 ‘와튼씨 종양’ 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이는 침샘에 생기는 양성 종양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혹부리 영감님처럼 목의 측면에 매우 큰 주머니를 형성하지만 악성 종양은 아닙니다. 이는 흡연자에게 잘 생기며, 물론 종양은 제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은 눈으로 하늘을 쓰윽 보고 내일 날씨를 가늠하는 정도로 아직은 좀 미덥잖습니다. 우리가 아는 일기예보가 좀 더 과학적이고 정밀한 자료를 통하여 나오는 정보를 종합한 것이듯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 의사는 발달된 과학 문명의 힘을 빌립니다. 그 예로 경부전산화단층촬영과 초음파하 세침흡입검사가 있습니다. 전자는 종양의 성상과 주위 조직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검사이며 후자는 수술 전에 종양의 조직 검사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검사입니다.

 

이 검사들을 통해 의사는 좀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리게 되고 이에 적합한 치료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간혹 어떤 분들께서는 검사가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리십니다. 물론 전쟁 시에 적진의 지리도 모른 채 더욱이 적군 병력의 종류와 규모도 모른 채 전투를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정보 수집이 필수라는 점, 질병과 싸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에 대해서 설명하면 대부분의 환자분들께서 궁금해 하시는 점은 수술의 위험성입니다. 이 질문에 “위험하지 않습니다.” 라고 딱 잘라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수술이든지 100퍼센트 안전한 수술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수술은 수술의 필요성이나 수술을 받고자 하는 환자분의 요구가 수술의 위험성을 상쇄시킬 수 있을 때 시행합니다.

 

혹부리 영감의 혹을 떼는 수술 역시 수술 후에 혹이 있는 쪽의 안면마비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며 수술부위에 출혈이나 염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하여야 하는 수술이기에 그런 위험성을 감내하고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위험성이 있는 수술을 다시는 받지 않으시려면 혹부리 영감님은 금연을 하셔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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