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 중이던 이산하씨는 지난해 11월 11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고 그의 부친은 그가 구속되자 이틀 후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1988년 3월 30일자 중앙일보)
때로는 아주 작은 신문기사 한 줄이 역사의 기록일 때가 있다.
4·3사건을 다룬 이산하의 장시 ‘한라산’이 문학의 표현과 자유문제를 놓고 법정공방을 일으키며 문단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는 신문 기사의 일부다.
지금은 가고 없는 중앙일보 기형도 기자가 이 기사를 썼다.
▲기형도.
1989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타계한 그는 기자 이전에 시인이었다. 서울의 한 심야극장에서 작고한 그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으로 독자들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질투는 나의 힘’ 일부)처럼 타계하기 전까지 치열하게 살았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빈 집’ 전문) 굳이 그리움으로 되돌아보는 사랑이라는 정공법적인 해석 외에도 지금도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가두는 시다.
▲물론 제주에도 그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다.
우울한 유년시절과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들을 따뜻한 공간에 펼쳐보인 그의 시 때문이다.
지난 16일 경기도 광명시에서 그의 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뇌졸증으로 급사한 지 17년 만이다. 유고시집은 해마다 1만 부 이상 판매되고 있다. 지금까지 40여 만 부가 팔렸다.
우리에게도 이만한 시인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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