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수'효과
'성낙수'효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한광문. 제주특별자치도 야구연합회장
1975년 5월 14일 입추의 여지가 없이 가득 찬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9회 대통령기 야구대회 결승전. 경북고의 투수 성낙수(현 제주고 감독)는 광주일고의 김윤환(전 기아타이거즈)에게 5회 1점, 6회 3점, 8회 1점 홈런 등 3연타석 홈런을 맞았다.

웬만한 배짱으로는 같은 선수에게 정면승부를 하지 않을 법도 하지만 두둑한 담력으로 끝까지 정면 승부를 펼친 성낙수의 이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성낙수 제주고 야구부 감독은 고등학교 당시부터 뛰어난 승부근성을 발휘했다.

이러한 끈기와 집념의 소유자 성낙수 감독은 2005년 3월 제주고 야구부 4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지휘봉을 잡은 첫 해인 2005년 그는 제3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에서 2004년 청룡기 우승팀인 성남고를 6-2로 이기며 전국대회 첫 승을 기록한데 이어 2회전에서 만난 청룡기 4강팀 야탑고마져 12-7로 물리치며 제주고를 16강에 오르게 했다.

이듬해인 2006년 7월 제주고는 제6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야탑고를 물리치며 사상 첫 8강에 진출했다. 기세가 오른 제주고는 같은 달에 열렸던 제26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도 용마고를 잡고 8강에 진출하는 등 8년간 전국대회에 총 8번 8강에 진출했다.

지난해까지 성낙수 감독의 손을 거쳐 나간 제자들만 해도 80여 명이 넘는다. 2008년 우리히어로즈 2차 1지명으로 프로에 직행한 투수 김성현으로 시작해 2008년에 롯데자이언츠의 신고 선수로 입단한 김수완으로 이어진다.

이후 천상웅 등 15명의 선수들이 성 감독의 손을 거쳐 프로야구계로 진출했으며, 그의 진가는 올해 들어 절정에 달하고 있다.

2013년 1차 1지명으로 LG트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는 임지섭이 있기 때문이다. 임지섭은 용마고 1학년 시절 야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성 감독의 부름을 받고 제주고로 전학을 왔다. 이후 성 감독은 2년간 그를 조련해 지난 5일 끝난 제68회 청룡기야구대회 겸 왕중왕전 예선 첫경기와 16강전 경기에 연속 등판해 18이닝을 완투, 3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팀을 8강에 진출 시키는 괴물로 키워냈다.

임지섭도 성 감독의 가르침에 따라 두둑한 배짱을 선보였다. ‘칠테면 치라’는 각오로 피칭하는 모습이 38년 전 대통령기 대회의 성 감독을 빼다 박았다. 청출어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듯하다.

1991년 삼성라이온즈를 그만 둔 성낙수 감독은 영남대 코치를 거쳐 11년간 대구의 중학교 야구감독을 하다 야구 불모지인 제주에 팔도중학야구대회를 유치하면서 인연을 맺어 2005년 제주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육지 감독이라는 외면과 싸늘한 눈초리는 초창기 그의 제주 정착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더 큰 어려움은 제주 출신 초·중등 선수들이 육지부로 진학하는 바람에 선수가 모자라 육지부에서 제주로 선수를 데려와야만 시합 출전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그동안 어려웠던 지난날을 훌륭한 제자들이 보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제주고는 2명의 청소년 국가대표를 보유하고 있다. 임지섭과 조영우가 그들이다. 조영우는 임지섭이 오기 전부터 제주고의 에이스로서 그 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는 임지섭과 함께 제주고를 이끌면서 타격에서도 발군의 자질을 발휘하고 있다.

앞으로 제주고는 다시 부활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와 10월 18일부터 인천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고등부경기를 남겨 놓고 있다. 전국체전에서는 동메달 이상도 가능 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방학 중이지만 제주고 학생들은 다시 구슴땀을 쏟고 있다. 비록 제주고 출신이 아닐지라도 제주 야구의 자존심인 제주고 선수들을 위해 도민의 이름으로 시원한 음료수 들고 찾아 응원해 주는 것도 야구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