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사 공동기획 지방분권 선진현장을 가다 - (1)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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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사 투표로 결정…행정은 지원

영국은 보수의 틀 안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특이한 사회적 시스템을 갖고 있다. ‘불문법(不文法)’의 나라답게 법제에 엄격하면서도 법제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며, 대단한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가 추진 중인 지방분권 개혁도 이런 기조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재정보조금제도 등을 통해 지방정부를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주민의 자유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주영 한국대사관의 이상복 행자관과 김덕균 홍보관은 “얼마 전 런던시에서 집에 문서를 보내왔는데, 그 문서에는 개선하고자 하는 교통문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의견을 자유롭게 적는 난이 마련돼 있었다”면서 “행정서비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노동당 정부가 런던특별시(Greater London Authority:GLA)를 부활시키는 과정은 주민의 합의에 근거한 행정서비스의 결정 및 집행의 압축판으로 보인다.

세계사적으로 중요하고 복잡다단한 일이 발생하는 런던이지만, 최근 10년여 년 동안 런던 전역을 관할하는 관청은 없었다. 보수당 정부가 1986년에 재정적 효율성 등을 문제삼아 다른 6개 광역도시정부와 함께 폐지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 정부는 초광역적 차원에서 경제개발과 쇄신, 기획, 교통, 주택 및 문화 등을 책임질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런던특별시의 부활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쳤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1997년 7월 ‘런던의 새 리더십(New Leadership for London)’이란 제목의 ‘자문 문서(consultation paper)’를 공표, 주민들의 견해를 물었다. 중앙정부는 1200여 건의 의견을 검토한 뒤 다음해에 백서(white paper)를 공표했고, 1998년 5월 런던특별시 부활에 대한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그 결과 34.6%의 투표율에 72%가 지지, 2000년에 런던특별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런던특별시에 관한 자문문서와 백서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게 하나 더 있다. ‘민선 시장과 의회’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영어로는 ‘민선(directly elected)’과 ‘의회(Assembly)’로 쓴다.

지금까지 영국에서는 직선 ‘지방의회(Council)’의 의원들이 호선으로 의장을 선출하면, 이 의장이 집행기관의 형식적인 수장을 겸하고 실질적인 업무는 공채된 사무총장이 처리해 왔다. 지방정부가 집행하고 의회가 감사하도록 하는 ‘기관분리형’이 아니라 ‘기관통합형’을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기관통합형은 지방의회의 폐쇄성과 효율성 문제로 적지 않은 비판을 불렀다. 그래서 중앙정부는 1998년부터 기관분리형 쪽으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과 관련해서 ‘직선’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중앙정부는 이런 일련의 개혁작업을 진행하면서 줄곧 ‘주민이 원할 경우’, ‘주민의 요구에 따라’라는 표현을 강조하고 있다. 요컨대 지역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는 주민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런던특별시 부활에 이어 제2단계 작업으로 지난 5월부터 초광역개념의 ‘지역지방정부’(우리의 광역도와 유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주민의 자유의사가 우선한다는 방침이 확인되고 있다. 지역지방정부 설립에 관한 백서의 제목은 ‘당신의 지역, 당신의 선택(Your Region, Your Choice)’이다.

토니 블레어 수상과 관련, 장관들은 “우리는 스코틀랜드, 웨일즈 그리고 런던특별시에 획기적인 권한을 부여했으며, 영국의 모든 지역들이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지역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공공서비스를 창출하면서 기회와 번영을 구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투표는 지지부진하고 중앙정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분위기로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재정능력이 취약한 북동부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의 지역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기존의 지자체가 지역사회업무와 교육 등에 관한 권한을 그대로 가질 것이며 ‘지역지방정부’는 정부와 합의한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사용한다고 강조하지만 야당인 보수당과 일각에서는 기존의 지자체 위에 ‘지역지방정부’를 두는 것은 중앙집권적 조치이며, 결국 기존 지자체의 권한을 빼앗아 가게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재정능력이 양호한 지역에서는 별도의 세부담을 우려, 반대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따라서 결국에는 지자체의 범위가 질서정연하지 않고 어수선하게 다원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런던의 변호사 폴 에반스씨는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는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방분권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지역별로 관심도와 이해의 정도가 천차만별이어서 쉽지 않다”면서 “지역지방정부 설립 문제는 기존 지자체들의 기능 중복 등 비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인데 전망이 불투명해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뒤늦게 지방분권 개혁에 시동을 건 보수적인 나라 영국이 앞으로 어떤 식의 유연성을 발휘해 나갈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영국의 지방분권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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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6사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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