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좀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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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소설가
이 노래 기억나십니까?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저 암울했던 70년대 유신시절을 후들거리며 건너온 분이라면 대개는 기억하고 있는 노래. 그렇습니다. 한대수가 부른 ‘물 좀 주소’ 라는 노래입니다. 당시는 닥치고 순종해야만 심신에 위해가 없는 폭압의 시대였지요. 그래서 대중가요라 해도 뭔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금지곡으로 묶고는 했는데, 이 노래도 가사가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요즘 이 노래를 자주 흥얼거립니다. 그러다 보면, 얼굴이 커서 말을 잘 타지 못할 것 같은 몽골의 어느 부족장처럼 생긴 한대수의 모습이 어김없이 떠오르면서, 아 지금이야말로 그를 제주로 불러다가 이 노래로 기우제라도 올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약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당시 이 곡을 금지곡으로 묶은 이들은 참으로 선경지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제주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보면 우리가 아주 심각한 물고문을 받고 있는 현실을 새삼 직시하게 되니까요.

지금 제주도가 자연으로부터 받고 있는 물고문은 정말 심각합니다. 유래를 찾기 어려운 폭염에다 장기간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고 있어 제주는 지금 열사와 일사의 땅입니다. 농토는 이미 사막의 모래밭과 다를 바 없고, 식수원의 물마저도 바닥을 드러내 급기야 중산간 지역 주민들은 제한급수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리 급박한 데 당분간 비 소식이 없고 가뭄을 극복할 만한 뾰족한 수도 없다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지구에 있는 물의 총량은 얼마나 될까요? 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액체 또는 얼음의 형태로 존재하는 지구상의 물은 약 14억㎦라고 하지요. 이는 지구를 동그란 공으로 가정할 때 지구 표면을 약 2.7㎞ 깊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이중 97.5%는 우리가 마실 수 없는 바닷물입니다.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민물은 불과 2.5%. 이런 민물도 지구표면을 약 70m 깊이로 덮을 수 있다고 하니 적은 양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민물의 69.55%가 빙하나 만년설이고 30.06%가 지하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호수나 하천의 물은 전체 담수 가운데 0.39%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이 물로도 182cm 정도로 지구를 덮을 수 있다고 하니 잘 아껴 쓰면 자연으로부터 물고문을 받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우리 제주도입니다. 우리 제주에는 안타깝게도 담수가 가능한 강이나 호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지역과 같은 가뭄에도 피해가 훨씬 심각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제주의 수자원보존대책은 각별해야 합니다. 이런 극심한 가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특별한 지혜와 정책이 필요합니다. 우선 식수원을 넉넉히 확보해서 제한급수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농업용수의 안정적 확보에도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비는 하늘에 맡기더라도 내린 비를 아껴서 관리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왕에 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신문을 보니, 20일에 아마추어 골프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입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와 제주그랜드호텔이 후원하는 ‘제1회 제주 삼다수·그랜드호텔배 아마추어 골프대회’ 말입니다. 이 대회는 ‘제주 삼다수와 한라수가 먹는 샘물 국가 우수 브랜드로 2년 연속 선정될 수 있도록 성원을 보내준 도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연다고 하지요.

소식을 접하고서 마음이 참 착잡했습니다. 제주도 공유재산인 지하수로 이윤을 내는 제주도개발공사가 하필이면 가뭄으로 온 도민이 고통 받고 있는 이때 이런 행사를 꾸리다니. 미리 잡힌 일정이라 하더라도 도내 아마추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이니 만큼 가뭄 물리치고 해갈된 다음에 열어도 늦지 않을 터인데, 이걸 꼭 이 고통의 시기에 삼다수 이름을 걸고 열어야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예로부터 가뭄이 들면 흉년으로 이어지고 흉년이 들면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마련입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제주도개발공사가 이 가뭄에 그 좋은 물 삼다수를 골프장 잔디에 뿌려서 대회를 열었다는 소문이 돌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이 폭염에도 연일 소방차를 몰고 나가 제한급수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소방관들의 구슬땀과 노고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달콤하게 상상합니다. 제주도개발공사가 골프대회를 취소한 비용으로 삼다수를 구입해서 제한급수로 고통 받는 분들의 타는 마음을 적셔주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고 말입니다. 이게 저만의 불편한 오지랖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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