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왜 인문학적 가치에 주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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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수필가
지난 8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 후 첫 일정으로 “인문학계의 석학들과 문화계 인사들”을 초청해 오찬을 했다는 기사가 각 신문에 실렸다. 대통령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창조경제도 인문학적인 상상력이 중요하다면서 인문학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도 밝혔다고 한다. 인문학과 문화에 애정을 표시한 것은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실은 인문학적 소양이나 인성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입시위주의 지식편중 교육, 교육을 수단으로 인식하는 도구주의적 교육관,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방법 등 교육의 현실은 인간다움과 그 가치가 실현되는 교육의 본질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과거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은 인문학과 연계되어 윤리?도덕에 대한 인문학적 가치, 인간다움과 같은 것이 가장 지배적이었고, 자기 수신(修身)을 통해 인격적으로 완성된 인간을 추구했다. 일종의 가치교육으로서, 사람 됨됨이, 인격, 행동 습관, 태도, 가치관 등을 올바르게 기르기 위한 인성교육은 인문학적 성찰에 의해 뒷받침되어 온전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근대에 들어 과학과 효율성 위주의 사회 앞에 인문학은 항상 뒤로 밀려있었다. 과학 위주의 사회는 큰 산업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삶의 여유와 인간다움을 빼앗아 갔다. 효율성 위주의 사회,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회, 모든 것이 기술, 돈, 능력으로 환원되는 사회가 되면서 인간은 사회 발전에 필요한 부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인간다움 상실이 지속됨으로써 삶은 점점 각박해져 갔고 사람들의 피로도 쌓여가고 있다. 우리에게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인문학의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 되고 있다. 21세기 첨단 과학기술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이자 전 세계가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지구촌사회는 분명 과거와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과거의 교육과는 양립할 수 없는 점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체제는 과거 교육문화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며, 유학적 사유(思惟)체계는 현대사회에서도 생명력을 가질 만큼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인성교육에 충분히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50여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인터뷰에서 만약 지구가 멸망해 인류가 다른 별로 이주할 때 꼭 가져가야 할 문화로 한국의 유학적 사유체계에 의한 인성교육과 효(孝)문화를 꼽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가족제도를 높이 평가하였고, 현재에도 우리나라의 특유의 부모를 공경하는 효사상이 21세기 세계적?보편적 가치로 재조명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유학적 사유에 의한 인성교육과 효(孝) 문화만이라도 계승,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우리는 지금 왜 인문학적 가치에 주목하는가? 인문학은 철학, 역사학, 문학, 종교학 등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함하며, 주제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물음에 답을 찾는 것이 인문학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 강국을 향한 질주는 무한경쟁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적자생존의 문화를 낳았으며, 끝없는 탐욕과 부정부패를 불렀다. 의식주는 풍요롭지만, 삶은 늘 고단하고 허탈하며 사회환경은은 불안해졌다. 현재의 각박한 사회를 인문학을 기반으로 지식의 전문화뿐 아니라 윤리와 가치관 그리고 대화?상생?돌봄의 따뜻함으로 더불어 사는 협력공동체를 이루고, 미래에 대한 창의적인 혜안을 가질 수 있도록 높은 이상과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려 깊은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인문학의 역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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