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vs 노인
해녀 vs 노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이한영. 제주해녀문화보존회 대표
한국고용정보원의 ‘산업 및 직업별 고용구조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직업을 426종으로 분류해 조사한 결과 이들 직업군 중 곡식작물재배원의 수가 102만5000명으로 상점판매원 159만40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들 곡식작물재배원의 평균연령은 63.1세로 조사 직업군중 최고령이었다. 이 통계를 통해 농촌의 고령화 현실을 재차 확인하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조사대상에서 해녀는 없었다. 만약 해녀가 조사대상 이었다면 종사원 평균연령부문에서 2위와 현격한 차이의 둔,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 했을 텐데 말이다. 서귀포시에 따르면 2012년 관내 현직 해녀는 30대 1명, 40대 27명(1.3%), 50대 307명(14.7%), 60대 707명(33.9%), 70대 이상 1043명(50%)으로 이들의 평균연령은 70세이다. 게다가 근 몇 년간의 통계를 살펴보면 해녀평균연령이 2009년 67세, 2010년 68세, 2011년 69세 2012년 70세로 매년 1세씩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고령화 추세는 신규해녀의 유입이 없는 한 매년 더 빠르게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가 기획한 ‘전통해녀물질공연’에서는 60~70대 제주해녀와 10~20대 러시아 수중발레선수가 함께 공연한다. 이들은 해녀를 ‘바부시카’(бабушка)라 부르며 손녀처럼 잘 따른다. ‘바부시카’는 러시아 말로 할머니란 뜻이다. 처음에는 수영이라면 국가대표급인 그녀들도 엄두내지 못하는 10m 깊이의 공연장 물속을 아무런 장비 없이 유유히 잠수하는 해녀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리고 고국에 있는 자신의 은퇴한 할머니와 비교하며 해녀의 잠수실력과 건강함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규정한다. 이는 1935년 제정된 미국의 사회보장제도의 은퇴연령 65세를 기준으로 삼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해녀는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이라 부르는 그리고 미국에서는 은퇴연령인 65세에 가장 최고의 시기를 누린다. 당신의 자식들은 이미 출가시켰고 천성이 부지런한 탓에 노후걱정은 안 해도 된다. 수 십년간의 물질은 최고의 기량으로 노련해졌고 물질하는 앞바다는 마치 당신의 부엌 찬장 마냥 훤히 꿰뚫고 있어 수확량도 상당하다.

하지만 바다는 마냥 낭만적이거나 녹록한 상대만은 아니다. 거친 바다에 찢겨진 낡은 잠수복 사이로 살이 에이는 겨울바다물이 들어갈 새라 손수 기우고, 높은 수압으로 인한 고질적인 두통과 귀의 염증 그리고 관절마디마디 마다 쑤시는 신체적 고통을 진통제로 다스리며 물질하는 고령의 해녀에게 물질이 힘드시지 않으시냐고 물으면 한사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하지만 바다 잠수를 전문으로 하는 나에게 그들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들의 고통은 잠수복을 입고 물에 들어본 사람만이 안다. 생과 사를 넘어들며 바다와 사투를 벌이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며 가쁜 숨을 뱉어 본 사람만이.

도정(道政)은 지속적으로 해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산업적 측면 뿐만 아니라 문화적 측면으로서 해녀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따른 보존과 계승에도 힘을 쓰고 있다. 조금 더 바란다면 지금의 해녀는 대다수가 해녀이기 이전에 노인이다. 사회적 약자로서 도차원을 넘어서 정부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배려와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물질을 계속할 수 있게, 그리고 그들의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게끔 지원하는 것은 단지 그들만의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의 전통이며 상징인 해녀의 지속가능성은 다른 한편으로는 제주도의,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건강함을 함의(含意)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