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들이 모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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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최근 내린 단비로 타들어가던 농작물들이 생기를 되찾고 있다.

폭염과 가뭄으로 밤잠까지 설치며 자식 걱정하듯 말라 죽어가는 작물 앞에서 노심초사하던 농심. 제주의 올여름은 그야말로 잔인한 계절이다. 입추가 지나고 백중 처서도 넘어갔는데 아직도 추기(秋氣)는 어디서 헤매는지. 한증막 같은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이 땅에 터 잡아 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도 추슬러야 하는데….

내 나이 되면 욕조에 수돗물 채워놓고 잠시 몸을 담가 명상에 잠기는 것도 피서의 한 방편이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산과 바다로 나가 심신의 열기도 식히고 아름다운 추억거리도 만들어야 한다. 제주의 청정 자연이 관광객들만의 즐길 거리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이웃과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사랑과 우의도 다지고, 아이들은 호연지기를 키우고,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법도 배우고.

멋있는 사람이 되려면 멋있게 노는 법부터 배워야 한댔으니.

젊음일 때는 현재의 고통 보다는 내일의 수다 목록에 끼워 넣을 화려한 레퍼토리도 중요한 것.

덥고 짜증나고 귀찮은 분위기를 단번에 쓸어버릴 그럴듯한 이벤트 같은 것들. 차타고 몇 분이면 닿을 수 있는 피서지가 지천에 깔린 섬. 불볕더위를 피해 호사 좀 부리며 내 고장 제주의 진가도 재음미해 보고.

오고가는 찻길이 짜증이고, 기대를 안고 다다른 곳 또한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사람에 치이기도 하고, 바가지 상술에 당하기도 하고, 거기다 아이들의 성화까지 가세하면 후회막급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소소한 악재에 미리 겁먹고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호기(豪氣)로 받아넘기면 아름다운 추억들만 오롯이 간직할 수도 있음이니.

나이가 드니 시시한 추억나부랭이들조차 삶의 소중한 이력이 된다.

젊은 시절의 추억들이 아름답게 각색돼 내 시야에 어른거리곤 한다.

지지리도 궁핍해 산과 바다를 맴돌며 산열매나 갯것으로 허기를 채웠던 시절. 먹이를 찾아 떠돌던 아찔한 모험들. 그것들이 풍요로운 오늘의 삶 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 사는 게 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긴 배는 곯았어도 인정과 배려와 여유는 차고 넘쳤다. 나와 이웃밖에 모르는 단순한 삶. 복잡하고 골치 아픈 세상사는 딴 나라 일처럼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과 사회와 국가가 한통속으로 엮여버렸으니.

아름다운 추억들이 모여야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 그것은 너와 나의 삶을 서로 긍정하고 포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네 편 내 편으로 갈려서 불신과 갈등과 욕설이 오고가는 사회에는 아름다운 추억거리는커녕 분노와 저주와 살기만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정신분열 증상들이 만연해 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심리학 용어로 ‘사회병질 증후군(sociopathic-syndrome)’이란다. 개인적인 정신분열 현상이 사회로 확산되면 사회도 덩달아 정신분열 증상을 앓게 되고 불신감의 만연, 도덕성의 실종, 한탕주의의 성행 등으로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공정 세상관까지 흔들린다.

어느 심리학자는 우리 사회가 사회분열증 초기단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끔찍한 진단까지 내린다. 그런데도 사회를 선도해야 할 정치판은 저나 제 편만 선이고 너와 네 편은 악이라고 서로 악다구니다.

화합과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외쳐댄들 곱게 봐주기 어려울 판국인데. 이를 빌미로 그럴싸하게 논쟁 판 벌여놓고 구경꾼 끌어 모으는 대중매체들은 어떻고.

모두가 올 여름 폭염만큼이나 지겹다.

이럴 땐 감칠맛 나는 가랑비보다는 장대비라도 흠뻑 내려서 섬의 열기를 속 시원하게 식혀주기라도 한다면 좀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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