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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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前 제주문인협회장. 수필가
행복이란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가치다.

톨스토이는 ‘세 개의 의문’이란 글에서 자신의 행복론에 대해 세 가지를 자문자답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둘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렇게 먼저 물었다.

그러고서 “현재다,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이다”라고 차례로 답했다.

현재라는 중요한 시간 속에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내게 필요한 사람이고,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게 ‘톨스토이의 행복론’이다.

현재를 놓치지 말고 필요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일, 이타적(利他的)인 삶을 행복, 곧 자신의 삶의 가치라 한 것이다.

조금 깊이 생각하면, 행복이라고 무조건 좋은 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단박에 끄집어낼 수 있다.

얼마 전, 찌는 날씨에 책을 펴고 앉았다가 ‘좋은 행복, 해로운 행복’이라는 글을 읽고 놀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가 소개돼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 몸에는 ‘나쁜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눈이 번쩍 뜨였다. 면역 조건이 동일한 80명의 성인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사회적 교류나 성취감으로부터 오는 ‘목적 지향적 행복’과 맛있는 것을 먹는 등 단순히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부터 오는 ‘쾌락적 행복’을 구분해 면역 세포에 차이가 생기는지를 실험한 것.

결과는 쾌락적 행복의 경우, 혈액 단핵구세포에서 스트레스와 연관돼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염증 발현 유전자가 증가하는 반면, 목적 지향적 행복은 이 유전자가 억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아닌가.

정신적으로는 쾌락적 행복이든 목적 지향적 행복이든 똑같이 느끼지만, 몸은 어떤 행복감인지 이미 인지하고 달리 반응한다는 얘기다. 먹고 마시고 놀면서 즐긴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데 힘이 실린다.

말하자면 쾌락적 행복감을 가질 때 신체는 감정적이 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열량 소모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복에 대한 해석과 인식의 분명한 수용 태세일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라 하는 식으로 흥겹고 짜릿하고 흥청망청 만족한 기분이면 이게 행복이다, 내가 지금 행복의 황홀경을 누리고 있는 거다’ 할지 모르나 상당히 착각일 수 있으니 이성의 눈을 번득여 분별해야 한다. 행복감이란 것이 찰나적·말초적·감각적인 게 왜 적은가. 결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여름, 무더위 속에 연일 이어지는 열대야로 힘든 계절을 나면서 ‘가마솥더위다, 한증막 속이다’며 투덜대지 않는 사람이 별반 없었을 것이다. 태양이 화염덩이로 보이고 정수리로 오는 불화살 같은 화기에 살의를 느낄 지경이었지 않은가.

한데 놀라운 일도 다 있다. 이렇게 나기 힘든 한여름 더위에 맞장 뜨느라 숨 밭아 하면서도 날씨 좋은 날보다 독서량이 더 많다는 통계가 나왔다지 않은가.

더위를 무릅쓰고 목적 지향적 행복을 더 많이 느끼는 계절인 걸까. 큰 변화다. 하기는 생각하기 나름, 이 여름을 얼마든지 즐겁게 보낸 이도 적지 않으리라.

평생 혹사해 온 ‘발’이나 호강시킨다고 절물휴양림을 찾아 탁족(濯足)을 즐기려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통에 하나 마나 하고 밀려나고 말았다. 공연히 발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주말을 피해 가면 좀 나을 것이라 하니 다시 날을 봐야겠다.

몸이 하라 하므로 지시를 따르는 게 온당한 처사 아닌가. 누리는 게 소소해도 ‘나쁜 행복’ 쪽은 밀어내는 게 사람의 일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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