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전 물 이용 상황
광복 이전 물 이용 상황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1930년대 용천수 사용 지역
물 운반거리 먼곳은 2km 달해


광복 이전 도내에서의 물 이용 상황은 일본인 학자들의 활발한 저술 등을 통해 그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마수다 이치지가 1930년대 제주도 곳곳을 답사해 작성한 ‘제주도의 지리적 연구’에 따르면 당시 도내 음료수 이용은 원시적 형태이며, 물 이용 형태는 △용천수 사용지역 △우물물 사용지역 △빗물 사용지역 △간이수도 지역 등으로 크게 4등분됐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용천수 사용지역은 해안에 위치한 마을들로, 아무런 인공시설을 갖추지 않고 용천수를 사용한 곳이 많았다.

해안에 접해 있기 때문에 물때를 계산해 음료수 운반 또는 세탁하는 일 등에 종사했고, 물을 운반하는 거리는 먼 곳의 경우 2㎞에 달했다.

특히 1934년과 1935년 조사에 따르면 용천수를 중심으로 물 운반거리에 따라 석유 빈 통 기준으로 1전에서 4전까지 4등급으로 구분해 물값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처럼 물을 배달시켜 물 문제를 해결했던 이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이며, 당시 제주시내에 고학하던 학생들에게 물 배달은 빼놓을 수 없는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우물물 사용지역은 기술.노력.비용 등의 어려움이 많음에 따라 제주시 지역 및 성산포 등지 등 일본인 거주지역과 일치했다.

빗물 사용지역에서는 암반의 오목한 곳과 점토층의 오목한 곳에 담긴 물을 이용하는 원시적 형태를 면치 못했고, 지질.지형이 좋지 못한 곳에서는 우기에 빗물을 항아리에 담아 저수해 사용했다.

서귀포시와 인근 지역은 간이수도 지역으로 분류됐다.

1930년대 들어 일본은 천혜의 보고인 제주도의 개발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을 동원해 기초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개발을 위해서는 물을 얻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일본중앙공업시험소는 도내에서 공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1937년 9, 10월 수원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는 도내 각지의 지형.지질구조 조사를 비롯해 수문지질조사, 60곳의 우물.용천수에 대한 수질성분조사가 실시된 한편 지역별 수원 현황과 용천수 이용방안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표선면 성읍리,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하동 등 3곳을 시추지점으로 정하고 최고 100m까지 시추해 지하수 개발을 계획했다.

이와 함께 해안마을의 음료수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수원 개량과 동시에 서로 인접한 마을에서 공동 이용이 가능한 수원을 찾아 간이수도를 시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조사는 제주도의 수량 및 수질에 관한 첫 조사로 평가되고 있다.

이 밖에도 제주도를 찾은 일본인들의 기록 구석구석에는 물허벅 문화를 비롯해 물 이용 상황이 서술돼 있어 물을 얻기 위해 고생했던 당시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