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외국 하청'은 선입견…기획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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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미르 유재명 대표…"성공작 조건은 캐릭터·스토리·팬"
   

국내를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 가운데 하나인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LOL)'의

월드 챔피언십 오프닝 애니메이션 영상이 한국 제작사의 손에서 빚어졌다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로드 투 더 컵(Road to the Cup·비상)'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영상은 공개 9일 만인 지난 12일 기준 330만 건의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제작한 주인공은 2010년 설립된 국내 애니메이션 업체 스튜디오 미르.

 

미국에서 주간 애니메이션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코라의 전설(The Legend of Korra)', 현지 매체들의 주목 속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분닥스(The Boondocks)'를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금천구 가산동의 스튜디오 미르 사무실에서 이 회사를 이끄는 유재명(41) 대표를 만났다.

 

"성공하는 애니메이션의 조건이요?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팬층이죠."
그는 애니메이션의 성공 조건 세가지를 꼽으며 그 사례로 '쿵푸팬더'와 '은하철도 999'를 들었다.

 

"기차로 우주를 가로지르는 것('은하철도 999')처럼 실사 영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은 무한합니다. 쿵푸를 구사하는 팬더 포('쿵푸팬더') 같이 그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캐릭터가 뒷받침될 때 팬들이 몰입하고, 지지하는 팬들이 생겨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89년 애니메이션 산업에 뛰어든 유 대표는 1999년 액션스타 청룽(成龍)의 이야기를 그린 '잭키챈 이야기'을 통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어 2005-2008년 미국을 비롯해 세계 120여 개국에서 방송된 인기 애니메이션 '아바타:더 라스트 에어벤더(AVATAR:The Last Airbender)'의 기획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그 후속편 격인 '코라의 전설'을 만들었다.

 

이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제작사인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의 관계자가 '코라의 전설'의 팬인 인연으로 관련 대회 오프닝 영상까지 맡게 됐다.

 

국내 시장을 공략하는 대신 미국 케이블 채널인 니켈로디언('코라의 전설')과 카툰 네트워크('분닥스')의 수주를 받아 현지 주류 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 

 

"국내에서는 '한국 애니메이션=외국 하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 인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하청을 결정짓는 본질은 작업하는 사람의 마인드에 따라 다르거든요."

원작이 미국 케이블 채널에 속해 있다는 점 때문에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병폐로 지적되는 '하청 구조'의 연장 선상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유 대표는 이 같은 시선에 대해 "답답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미국에서 돈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하청의 논리를 대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국내 방영이든 미국 방영이든 어느 곳에서 투자를 받기 마련인데, 그 대상이 외국이라고 하면 더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어요. 김지운·박찬욱 감독이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하에서 현지 감독 데뷔를 했지만 다들 박수를 쳐 주지 않았습니까."

그는 자신이 제시한 '마인드의 차이'의 구체적인 예로 제작 과정에서 원작자가 들이미는 지시문(indication)'을 소개했다.

 

"외국 업체가 국내 제작사에 요구하는 지시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이게 들어가야 하고, 이 부분에서는 이런 동작이 나와야 한다는 식의 타이트한 주문이죠. '아바타:더 라스트 에어벤더'를 기획할 때 이 지시문을 빼지 않으면 결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고 우겼습니다. 애니메이터가 상황에 맞는 감정을 가장 잘 아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이를 지시하느냐는 논리였죠."

유 대표는 "미국 니켈로디언 본사도 지금은 지시문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코라의 전설'의 결과가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원작을 꾸준하게 개발한다면 이 같은 하청의 문제가 빚어질 여지는 없다.

 

1980년 후반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단가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상대적으로 완성품의 질에 비해 제작비가 싼 한국에 수주가 몰려 자체 개발 대신 하청에 스스로 발이 묶이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에서 1천만 원을 받을 수 있는데 국내에서는 같은 시간 일하고 100만 원밖에 받지 못한다면 어느 실력 있는 제작자들이 그쪽 일을 마다하겠습니까. 결국, 우리 스스로가 창작의 DNA를 스스로 갉아먹은 겁니다."
유 대표는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제작은 잘하지만 기획 경험이 적다는 게 문제"라며 "제작만 20년 가까이하다 보니 감각이 아무리 좋아도 스토리텔링과 내러티브를 만드는 과정을 어려워한다"고 지적했다.

 

'코라의 전설'은 '리퍼블릭 시티(Republic City)'를 수호하는 주인공 코라의 활약을 담은 판타지·액션물이고, '분닥스'는 미국 흑인 사회를 적나라하게 풍자한 성인 타깃 작품이다. 최근 성공을 거둔 일련의 국산 애니메이션들이 그 시청 연령을 영·유아로 잡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는 "영·유아물 붐이 인 것은 '뽀롱뽀롱 뽀로로'부터"라며 "성공 공식이 딱히 나오지 않는데다가 국내 관련 산업이 무너지겠다 싶으니 다들 영·유아물 제작으로 간 것이다. 이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 수혜를 본 대표적인 케이스로 가수 싸이 씨가 있죠. 애니메이션도 앞으로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면 반응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영·유아뿐만 아니라 청소년·성인 시장도 겨냥할 수 있을 거예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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