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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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득염. 전남대학교 교수 건축학부
올해에도 어김없이 풍성한 가을이 무르 익어가고 있다. 빠른 추석이 지나고 추수를 하는가 하였더니 단풍이 들고 벌써 아침 저녁으로는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그냥 일상에 빠져 달리기만 하였던 예전과는 달리 올 가을엔 왠지 허전하고 가슴 답답하다. 그래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되돌아보니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시작한지 벌써 60년이 되었다. 환희와 고뇌가 함께 하였고 성공과 좌절이 반복되었다.

신비로운 생명체로 태어나 신의 섭리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원하지도 않았던 삶이 이곳에 던져졌고 목적지도 모르는 종착역을 향해 길고 긴 여정을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선인들이 무언가 의미 있는 세월의 절점들을 만들어 자기성찰기회를 주는 것 같다. 70세의 고희(古稀), 77세의 희수(喜壽), 80세의 산수(傘壽), 88세의 미수(米壽), 90세의 졸수(卒壽), 99세의 백수(白壽), 100세의 천수(天壽)라는 뜻이 주는 의미가 무겁다.

요즘은 80에 돌아가셔도 아쉽다 하니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울지 모르겠다. 인생도 여행처럼 출발했으니 언젠가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섭리일텐데 어리석게도 무언가 잡고 놓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지난여름 이름하여 회갑여행을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평소에 가고 싶은 곳을 숙의하던 중 서유럽의 박물관이 있는 대도시를 가자는 데 동의하고 10여일만에 여기저기를 주마간산격으로 점 만 찍고 다녀왔다. 뒤늦게 사진을 정리하며 여행지를 되돌아보니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여기를 또 갈까 하는 생각에 아쉬운 느낌도 든다.

여행 자체가 좋아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그냥 허둥지둥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차분히 보고 느끼고 올만큼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냥 허둥지둥 살아가는 것이지 여행처럼 선택하고 준비하고 나중에 스스로 되돌려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알랭드 보통은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하였다. 비행기나 배, 기차보다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사이에는 기묘하다고 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유도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어려운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에 따라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빅토르 위고는 여행이란 지극히 아름답고 너무 커서 좁은 시야를 벗어나 버리는 어떤 것이라 하였다.

여행은 새로운 것에 눈을 뜨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의미를 준다.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이라면 여행만큼 역동적으로 풍부하게 드러내준 것은 없다.

일상으로의 벗어남, 만남과 헤어짐, 현실과 로망, 새로움에 대한 열망, 일과 생존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자주 나타나는 문제는 기대와 현실의 관계와 간극이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 특히 누구와 함께 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숱한 문제와 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조언들이 있지만 어디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가? 모두 자신의 몫으로 던져진다.

여행을 위해 몇 권의 책을 보았다. 최상운의 ‘잊지 못할 30일간의 유럽예술기행’이라는 도전적인 책은 미술관과 예술작품을 연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受胎告知가 있는 미술관을 알게 되고 유럽 최고의 미술관을 느끼게 되었다. 설혜심교수의 ‘그랜드투어’는 여행의 의미를 알게 하는 귀한 자료였다.

최초의 여행은 정복자들의 전쟁이었고 무역을 위하여 동서양을 건너는 모험도 있었다. 서양역사에서 최초의 여행자는 그리스인 헤로도토스이다.

그는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본 것과 들은 이야기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여행에서 얻은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라는 책을 씀으로서 ‘역사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한다. 또한 순례자들은 예루살렘과 로마,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등의 성지를 속죄의 차원에서 순례여행 하였다.

특히 영국인들에게 있어서 여행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 콤플렉스를 느껴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엘리트교육의 최종단계였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영국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보내지 않고 곧 외국여행을 시키는데 대단히 발전되어 귀국한다라고 여행의 가치를 평가하였다.

그런데 우리네 청년들은 어떤가. 취업을 위해 자신의 스펙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도 여행의 참 의미를 새겨 또 다른 여행에 도전해보아야 할 때다.

실크로드를 걷고 차마고도를 넘어보며 히말라야 계곡을 트래킹 해본 자가 영어를 잘하는 자보다 더 창의적 사고를 하고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잠재적 능력이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에 봉사여행을 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평화운동 여행을 하는 것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위해 진정 의미 있는 준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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