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제주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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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중 훈. 시인/국제PEN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장
연어는 회귀성 어류다. 요즘 강원도 남대천에는 이들 연어 떼로 장관을 이룬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로 회귀하는 연어의 70% 이상이 이 남대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만 봐도 족히 그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는 일이다. 그 어리고 어린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맑고 고운 강을 떠나 거칠고 험한 북태평양 베링 해역까지 떠돌다 5년이 지난 지금 성숙할 대로 성숙해진 몸으로 당당하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목숨 걸고 유영했던 짧지 않은 세월, 그들의 겪었던 온갖 역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거칠고 험한 세상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오로지 다음 세대의 탄생을 위한 생의 최후를 몸부림으로 불태우고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다. 회귀의 의미와 삶의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도 회귀의 본능은 있다.

나는 이 연어의 회귀와 같은 어느 제주 여인의 의미 있는 회귀를 알고 있다. 고영림이라는 프랑스 언어학자이며 제주가 낳은 석학이다. 제주시 산지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그의 고향집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 과정을 끝으로 제주를 떠나 서울로, 프랑스로 그의 학문적 삶의 영역을 넓히다가 귀향한 재원이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어린 연어가 27년 만에 모천인 산지천으로 회귀한 것과 같은 심정으로 귀향했노라고 했다. 산지천은 외롭고 지친 그녀의 외지생활을 흔들림 없이 지탱해준 에너지의 원천이었으며 정신적 자양분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그녀의 모천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사단법인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를 창립했다. 이 단체가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는 단체일지라도 그녀가 그동안 터득한 지식과 경험과 세계 지인들과의 인연들을 바탕으로 제주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함에서다. 해마다 열리는 프랑스 영화제, 매월 프랑스 명화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제주씨네클럽, 제주시 원 도심 옛길 탐험, 프랑스어 통역사업 등이 그녀가 이루고자하는 회귀의 꿈이며 소리 없이 실천하고자 하는 문화사업의 일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지생활에서 귀향하면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여 살려고 노력한다. 출향이 마치 고향을 버리고 떠난 죄인 같은 느낌이 들어서란다. 고향을 지켜온 지인들도 모처럼 돌아온 그들을 별반 반기는 기색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다. ‘떠날 땐 언제고 이젠 갈 곳 없으니까 돌아온 것 아니냐’는 눈치도 있어서다. 그러한 사정을 아는 그녀기에 스스로를 ‘돌아온 제주꺼’랍시고 처신도 조심스럽다. 그렇다면 ‘제주꺼’란 어떤 의미일까. ‘제주꺼’란 제주가 갖고 있는 어떤 사물에 대하여 통칭하는 ‘제주의 것’의 제주말 속어다. 이 속어는 ‘제주사람’이라는 말까지도 ‘제주꺼’로 낮춰 부르는 데 통용되고 있다. 비슷한 속어 중에는 ‘육지꺼’라는 용어도 있다. 이 역시 육지에서 제주에 건너온 사람이거나 육지사람들을 통칭하는 속어다. 서로 터놓고 상통하기엔 불편한 관계의 속어다. 독특한 제주문화와 외지문화의 충돌에서 오는 이질감의 결과라고나 할까. 아니면 오랜 세월 이용만 당해왔던 외지인들에 대한 거부감과 유배지에 불과했던 제주사람들의 역사적 피해의식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고향을 떠났다 귀향한 제주사람들에게도 ‘돌아온 제주꺼’라는 별칭으로 그들을 경원시한다. 지금 제주는 몇 시인가. 글로벌시대에 사는 우리가 제주를 제주국제자유도시로 선포한 지는 언제였던가.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육지꺼’, ‘제주꺼’, ‘돌아온 제주꺼’라는 한계 속 ‘꺼’의 망령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고영림, 그녀가 모천인 제주로 회귀하여 조용히 국제문화교류사업을 펼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녀와 그녀의 사업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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