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풍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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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숙.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 관장. 시인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려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섬 모양을 따라 빽빽하게 푸름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제주의 첫 모습이라는 것을.

제주 어디를 둘러보나 소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변치 않는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했다. 거친 바닷바람, 메마른 모래벌판에서도 제주의 소나무는 푸른 생명력과 제주인의 성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지속적으로 부는 바람결 따라 몸의 방향이 틀어지고 한쪽으로 치우친 모습조차도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 내며 관광자원이 됐다. 제주의 소나무는 제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브랜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소나무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인해 소나무들이 고사하고 있는 것이다. 전염성이 매우 강해 제주 전역에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어 제주는 흡사 가을 단풍이라도 든 것처럼 붉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제주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지역마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방제 작업에 임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에서도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에 따라 소나무 재선충병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방제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자원 봉사자들을 비롯한 많은 인력이 방제 작업에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에 다다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행정의 태도도 물론 문제가 되겠지만, “예방에 실패했다, 대응책이 늦었다, 방법이 틀렸다”라고 비판만 하는 도민들, 혹은 소나무 재선충병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도민들이 그 한계점을 더욱 앞당긴다는 생각이 든다.

유독 모래가 많은 제주. 몇 십 년 전만 해도 겨울이 돼 하늬바람이 불면 모래가 바닷가를 거쳐 농토로 날려가 농토를 사막화 시켰다고 한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있던 도민들을 일으켜 세운 것은 1954년대 말부터 1960년까지 6년에 걸쳐 국가시책사업으로 진행된 ‘사방조림사업’이었다.

모래사장에 소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고, 모래가 날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 즉, 모래바람으로 사막화 되는 농토의 제 기능을 부활시키자는 사업인 것이다.

모래에 가로 3m, 세로 4m로 바둑판처럼 구덩이를 파고, 그 자리에 소나무를 심어서 쓰러지지 않도록 고정하고,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짚으로 두르고, 물을 주며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소나무 한 그루 겨우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실패할 때마다 다시 구덩이를 파고 소나무 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조금씩 소나무 숲의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역 주민은 물론 초·중·고등학생의 고사리 손까지 모두 동원됐다고 하니, 얼마나 거대한 프로젝트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다. 목적이 농토를 지키기 위한 사방조림사업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그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소나무 숲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소나무 숲의 흔적과 소나무 숲을 만들기 위한 노력, 그리고 쏟아 부었던 시간, 이 소나무의 모든 역사가 어쩌면 전부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이제는 ‘우리 마을 소나무도 행정에서 알아서 방제해주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은 접어야 할 때다.

도민 전체의 손으로 만들어낸 제주 소나무 숲. 도민 전체의 손으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

마을을 중심으로 자생단체들과 힘을 합쳐 직접 우리 마을 소나무 지키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연한 풍경은 없다. 도민 전체가 함께 가꾸고 지켜야만 제주만의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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