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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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 '다층'편집주간
‘지랄 총량의 법칙’을 아십니까?

표현이 상당히 거칠게 느껴지겠지만, 이 용어는 김두식 교수(경북대)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사춘기 딸의 행동을 절망스러워하던 김 교수는 한 지인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고 합니다. 지인은 ‘지랄 총량의 법칙’을 알려주면서,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더랍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남은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 그 양은 반드시 다 쓰게 돼 있습니다.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려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흔히들 중학교 재학 시절을 일러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말합니다. ‘제2의 사춘기’라거나, ‘심리적 이유기(離乳期)’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직 가치관이 채 성숙하지 못하고 자아 정체성도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시기이기에, 많은 것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기존의 규율과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반항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도 매우 불안해 이 시기의 아이들은 가을철 나뭇잎이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까르르 웃어대고, 이유없이 자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화를 내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입니다. 오죽했으면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가 ‘중2’ 무서워서라는 농담까지 생겨났을까요.

학교에 오랜 세월 근무하면서 종종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게 되는데, 소위 말하는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들의 어머니들의 공통적인 하소연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말도 잘 듣던 아이인데, 중학교 와서 비뚤어졌다. 아이 때문에 못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부러 엄마들에게 말합니다. “엄마가 그렇게 키워놓고 이제 와서 자식 때문에 못살겠다고 말하면 어떡하느냐”고요. 그러면서 앞의 ‘지랄 총량의 법칙’을 일러줍니다. 그러면 부모님들은 참 많은 위안을 받는 듯합니다.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낙제생’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도 아마 늦바람을 타서 늦게 ‘지랄’을 한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사회에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하는 아이들의 사회적 부적응이 결과적으로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학교의 낙제생이 사회의 우등생’이냐고 반문하실 겁니다.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지랄’의 재고가 더 남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그걸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평생 동안 ‘지랄’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이는 ‘지랄의 과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환경의 탓이라구요.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지랄’할지 모르지만, 그 지속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결론적으로 ‘지랄’의 치유를 위한 특효약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이 ‘지랄’을 하거들랑, 결코 방치하지 마시고,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적극적으로 지도한다고 야단치거나 잔소리를 하게 되면 그 지랄의 양은 점점 에너지가 충만하게 돼 질풍노도(疾風怒濤)가 되고,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역효과만 낳을 뿐입니다.

오늘의 ‘지랄’이 내일의 ‘평화’를 위한 일시적 시련이라 생각하고, 조금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그 ‘지랄’이 멈출 때까지 조금만 더 인내하면서 기다려주십시오.

태풍은 언젠가 그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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