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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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종종 서울에 머물러야 할 일이 생긴다. 하루 이틀쯤은 보도블록으로 포장된 반듯한 인도를 따라 빌딩 숲을 누벼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넘어가면 목안이 근질거리고, 눈이 침침해지면서 핏발까지 선다. 몸 안에서 대피경보를 내 보냄이다. 서둘러 제주로 돌아가라는.

서울살이에 내 몸을 애써 적응하려 해봐도 보름을 넘기기가 힘들다. 내 몸은 나고 자란 제주의 풍토에 속속들이 길들여져 서울의 낯선 환경을 거부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오염된 서울의 공기가 싫은 것이다. 회색 커튼을 드리운 듯 하늘이 부옇게 흐릴 때는 밖에 나가는 게 공포다. 미세 먼지 같은 오염 물질이 대기 중의 수분을 빨아들여 생기는 연무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매연이나 공장에서 내뿜는 배기가스, 석탄이나 석유 등의 화석연료가 탈 때 나오는 물질들은 인체 내 기관지나 폐에 흡착돼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꺼울 게 당연하다. 인간이 벌여놓은 문명의 덫이다.

공항에 내려 제주에 발을 딛는 순간 내 안으로 드는 공기의 그 상쾌한 맛.

바다 냄새와 들풀향이 어우러진 내 고장 특유의 향취다.

그러나 인간의 편의를 좇는 개발 자본이 제주의 청정자연을 그냥 놔두겠는가. 푸른 들녘이나 해변에는 골프장, 펜션, 리조트 같은 관광시설들이 들어서고, 곶자왈은 이미 20%나 훼손돼 버렸다고 한다.

도저히 들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울창한 숲속까지도 이것들이 침투하고 있다고 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제주 섬 본연의 운치는 사라지고 바다에 떠 있는 문명의 구조물이 돼버릴 듯하다.

자본과 권력이 합세한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음 세대가 누려야할 청정 자연의 혜택까지 덤으로 얹어 우리의 산과 들과 바다를 개발 자본에 팔아넘기고 있음이다.

세수를 늘려 도세를 확장하고 인력과 시설을 확충한다고 민생복지가 구현되는 건 아니다.

유동 인구의 증가나 성과지표 상승이 호도하는 착시 경제는 도시 광역화나 인구 집중, 난개발에서 파생되는 역기능들을 오도하거나 가려버린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자본이며 개발인지 긴 안목으로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양적인 가치를 추구하던 지금까지의 삶은 질적인 가치 추구로 변화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기보다는 지친 심신에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 줄 조용한 휴식을 더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

우리 제주는 이런 삶의 추세에 어울리는 힐링(healing)의 섬으로 다가가야 한다. 청정자연에 어울리는 지역산업 육성이 필요함이다. 분별없이 개발 자본을 끌어들여 손쉽게 부수 이익이나 얻으려 해서는 결국 제주의 자연은 그 자본의 이익 창출 도구로 전락해가며 황폐화만 가속될 뿐이다.

얼마 전 어느 TV채널에서 일본의 어느 청정지역 경제 활동 사례를 소개했다.

청정 브랜드를 앞세운 나뭇잎과 농산물 등의 먹거리 판매로 윤택한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벤치마킹하러 찾아드는 손님맞이에 즐거운 비명이란다.

제주의 물도 애초에는 환금자원으로 생각지 못했다. 이제는 블루오션의 가치를 창출할 소중한 자원임을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제주의 자연이 청정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라 숲, 제주 들, 제주 바다. 그 공간과 산물에 창의적인 아이템(item)만 더해진다면 물과 같은 소득원이 될 수도 있음이다.

제주의 청정자연을 지역 경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연구와 노력이 요구됨이다. 특화된 지역들이 경제 주체가 돼 고용이 창출되고, 경제 실리가 가계로 돌아가 선순환 되는 해법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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