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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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 수필가
어느새 겨울을 알리는 바람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연말이 다가올수록 어려운 아버지들이 많아진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경제는 계속 침체돼 경제지표와 체감지수가 아주 낮다. 경제가 팍팍하니 마음도 각박해 민심은 덩달아 더 살기 어렵다고 한다.

서민경제가 어려울수록 이 땅의 아버지들은 힘들다.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면서 가정의 대들보가 돼야 한다고 날마다 다짐한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아버지의 자리는 자꾸만 좁아졌다.

정작 마음의 안식을 위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할 가정에서 조차 어깨가 짓눌러 있다. 가족의 중심에서도 아버지가 설 자리가 없어진 지는 오래다. 자녀 교육은 물론 재산권 행사에서도 아버지는 그 주도적 위치를 상실한 지 오래다.

몇 년 전 한 TV 방송에 아버지들이 나왔다. 울고 싶은 사연들로 가득한 아버지들이었다.

한 아버지는 30년 동안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자녀들에게 자기 직업을 속이고 살아왔다고 했다. 자녀들이 창피해할까 봐서였다. 30년의 비밀이 열리는 순간 아버지가 울고, 자녀들이 울고, 동료 환경미화원들도 함께 울었다.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아들과 딸의 뒤에는 온갖 질시와 아픔을 견뎌온 아버지가 있었다. 또한 기러기 아빠의 쪽방생활과 아내의 배신에 복수를 맹세했지만 얼마 전 나타난 그 아내의 늙고 쇠약한 모습에 그만 모든 걸 용서하고 함께 살게 됐다고 한다.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 중엔 이보다 더 기막힌 사연을 가진 이들도 많을 터다.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의 눈물’에는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아버지들, 부표처럼 떠돌며 가정과 사회로부터 설 자리를 잃어버린 이 땅의 아버지들, 이 시대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가 잘 표현돼 있다.

이 책은 또한 50대 가장들의 애환과, 가족사랑, 가정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면서도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로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눈물을,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한 아버지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 시리게 일깨워 주고 있다.

필자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식들을 키우느라 정작 당신 자신을 돌보지 못하셨던 나의 아버지가 생각나서 또 한 번 가슴 뭉클하게 했다.

이 소설처럼 보통의 아버지들은 가깝고도 먼 존재로 느껴지는 이유는 서로 간의 표현이 서투른 탓이다. 아들의 감기를 대신하고 싶고 그 아들을 두고 출근하는 아버지의 발걸음이 무거운 것도 아들들은 모른다.

시간이 저만치 지나고 나서야 돌이키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큰 사랑이며, “아버지”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짠해지는 것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다. 아버지는 밤하늘 어둠 속으로 걸어가면서 그 뒷모습을 우리에게 남기고 가는 운명적인 존재이다.

유대의 금언에는 “신이 어머니를 보낸 것은 신이 세상 모든 곳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을 대신하는 어머니가 없다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아버지가 없다 해도 역시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한다 해도 그 세상은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오늘처럼 찬 바람이 부는 연말이 되면 힘든 경제상황을 돌이켜 보게 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 보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라는 책무 때문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버지들로 가득 찬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겨울 바람이 몰아치는 연말연시에 굳세게 견디려 해도 마음속으로 울고 싶은 아버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녀들의 진심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사랑의 말 한마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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