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새해의 묵상(默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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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前 중등교장 / 시인
“미드라시(Midrash)가 어떤 것입니까?” 어느 모임에서 물어봤다. 아는 이가 없었다. ‘유대교에서 구전·전승된 성서본문을 해석하고 설명해 놓은 것’으로 요약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미드라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다윗 왕이 궁중의 한 보석세공인들에게 명령했다.

“나에게 반지하나를 만들어 주시오. 그 반지에 글귀를 새겨 넣으시오. 내가 어떤 전쟁에 이겨 그 기쁨에 날뛰고 있을 때, 내 마음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내가 절망에 빠져 꼼짝 못하고 있을 때, 그 글귀로써 헤어날 수 있는 그런 글귀를 새겨 넣어 주시오.”

보석세공인은 왕의 명령대로 반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걱정은 그 글귀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왕자 솔로몬을 찾아가 어떤 말을 새겨 놓아야 좋을까 물었다.

솔로몬이 대답했다. “이런 말을 써넣으시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승리의 순간에 이것을 보면, 자만심이 가라앉힐 것이고, 낙심 중에서도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불교는 ‘무상(無常)’을 말한다. ‘변하지 않음(常)’은 없다(無)‘이다. 모든 것은 바뀌어 지나가는 것이니, 지금의 현상에 너무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서(聖書)나 불서(佛書)는 똑같은 깨우침을 주고있다.

미드라시에 나오는 또 하나의 반지에 대한 이야기.

어느 부자가 어떤 반지를 갖고 있었다. 매우 신통(神通)하게도, 그 반지를 낀 사람이 그 반지의 신통력을 믿고 살아가면, 원하는 바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부자는 나이가 들고, 병이 들었다. 그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세 아들 중에 누구에게 그 반지를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어느 보석세공인을 불렀다. 자신이 끼고 있는 그 반지와 똑같은 반지를 두개 더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세상을 뜨기 전, 그는 세 아들을 하나씩 불렀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이 반지를 너에게만 준다. 이 반지의 신통함을 믿고 살아가라.”

그 노인이 죽고 난 후, 세 아들은 깜짝 놀랐다. 자기에게만 준 것으로 믿었던 그 반지를 형도 아우도 모두 끼고 있는 게 아닌가. 서로 다툼이 일어났다. “그 반지는 가짜야. 내 것이 진짜란 말이야.” 서로 다투던 끝에 그들은 어느 것이 진짜인가를 확인받으러 가자고 했다. 솔로몬왕에게로 갔다. 왕은 이런 답변으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 반지는 ‘진짜라는 믿음’과 함께 살아가야만 신통력을 받는 것이다. 남의 반지를 가짜라고 헐뜯으라는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진짜’라고 믿으면 된다. 가서 그렇게 살아가라.”

나의 신앙은 정교(正敎)이고, 남의 신앙은 사교(邪敎)라고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불자(佛者)들은 백팔배를 한다. ‘내 몸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만 옳다는 이 모든 어리석음에 참회(懺悔)합니다’라고 참회(백팔대참회39~44)한다. 국어사전은 참회를 ‘과거의 죄악을 깨달아 뉘우쳐 고침, 또는 죄악을 자각하여 이것을 하느님 앞에 뉘우쳐 고백하는 일’로 풀이하고 있으니, 천주교에서의 고해성사(告解聖事)와 다를 바 없다.

모든 삶은 지나가는 것이다. 가닿는 그곳은 어딜까. 그곳이 죽음이라면, 죽음 또한 무상(無常)이러니, 변하지 않음이 아니다. 그 죽음이 변하면 어디로 가게 될까. 다시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세밑·연초(年初)에, 고해·참회로 영혼을 맑게 하고픈 짧은 묵상(默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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